전체 글225 털이 말을 걸 때: 퍼리 (Furry) 1. 퍼리 (furry)우리는 왜 동물에게 말을 걸고 싶어질까. 왜 어떤 사람들은 동물이 인간처럼 서 있고, 말하고, 웃는 그림 앞에서 설명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낄까. 퍼리(furry)는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된다. 퍼리는 간단히 말해 동물적 외형과 인간적 성격이 결합된 존재를 좋아하거나, 그 세계관을 향유하는 문화다. 흔히 “동물 옷을 입는 사람들”로 오해되지만, 그건 퍼리 문화의 아주 작은 일부다. 조금 더 풀어 말하면 이렇다. 우리가 미키 마우스를 볼 때, 그는 쥐이지만 동시에 사람이다. 톰과 제리는 고양이와 쥐지만,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감정 싸움을 한다. 이처럼 동물의 몸을 빌려 인간의 감정과 사회를 이야기하는 방식, 그것이 퍼리의 핵심이다. 중요한 점은, 퍼리는 성적 취향이 아니라 상상력의 .. 2026. 1. 12. 당신의 약함을 사랑할 준비가 되었는가? 요하나 헤드바 (Johanna Hedva) 1. 요하나 헤드바 (Johanna Hedva)그녀를 설명하는 일은 어쩌면 창밖의 안개를 설명하는 일과 비슷할지 모른다. 손에 잡히지 않지만, 분명히 살결을 적시는 것들. 그녀는 한국계 미국인이고, 예술가이며, 점성술사이고, 무엇보다 '아픈 여자'이다. 헤드바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났다. 햇볕이 너무 강해 모든 것이 평평해 보이는 도시. 그녀의 아버지는 백인이었고 어머니는 한국인이었다. 하지만 이 문장만으로는 그녀의 배경을 다 설명할 수 없다. 그녀의 가족사는 마치 겹겹이 쌓인 퇴적층 같다. 그녀의 할머니는 한국 무속 신앙에 깊이 닿아 있던 분이었다. 사회학에서는 이를 '문화적 자본'이라 부르지만, 일상의 언어로 말하자면 그것은 '신비한 기운이 흐르는 부엌' 같은 것이다. 된장찌개 냄새와 향.. 2026. 1. 9. 상처를 실로 꿰매는 그 행위: 쑬루세 (suture) 1. 쑬루세 (suture)쑬루세는 프랑스어다. 의미는 단순하다. 꿰매기, 봉합하기. 상처를 실로 꿰매는 그 행위다. 이 단어가 영화이론으로 들어왔을 때, 뜻은 조금 달라졌지만 중심은 그대로다. 쑬루세란, 영화가 관객을 화면 속 세계에 ‘꿰매 넣는’ 방식이다. 조금 더 쉽게 말하면 이렇다. 영화는 계속 말한다.“이건 그냥 화면이 아니야. 이 안에서 보고, 느끼고, 판단해.” 우리는 그 제안에 거의 저항하지 않는다. 쑬루세는 강요가 아니라 습관처럼 작동하기 때문이다.2. 처음에는 언제나 구멍이 있다모든 영화는 처음에 구멍으로 시작한다. 화면이 켜지는 순간, 우리는 묻는다. 이 장면을 누가 보고 있는 걸까? 이 카메라는 어디에 서 있는 걸까? 왜 이걸 지금 보여줄까? 이 질문들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존재.. 2026. 1. 7. 2026년- 연하우표란 무엇일까. 1. 연하우표란 무엇인가연하우표는 말 그대로 한 해 동안 발행된 우표를 모아 만든 공식 기록물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우정사업본부가 매년 발행한다. 그 해에 나온 기념우표, 보통우표, 특별우표 등이 한 권의 우표첩 안에 정리된다. 쉽게 말하면, 연하우표는 “그 해의 국가적 표정”이다. 어떤 해에는 문화유산이 많고, 어떤 해에는 과학기술이나 스포츠가 중심이 된다. 우표는 국가가 무엇을 기억하고 싶은지를 가장 정직하게 드러내는 매체 중 하나다.2. 대한민국 연하우표의 시작대한민국에서 연하우표가 본격적으로 발행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다. 정확히는 1974년부터 ‘연하우표첩’이라는 이름으로 체계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도 우표는 있었지만, ‘한 해를 정리한다’는 개념은 아직 명확하지 않았다. 산.. 2026. 1. 5. 〈웃음이 먼저 쓴 문장 – 엘렌 식수, 말해지지 않은 몸의 글쓰기〉 1. 엘렌 식수 (Hélène Cixous)엘렌 식수. 이름을 소리 내어 발음하면, 어딘가에서 새가 날아오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단단한 철학자의 이름이라기보다는, 숨과 웃음과 균열이 섞인 어떤 제스처처럼 들린다. 실제로 그녀는 철학자이자 문학이론가이면서, 동시에 시인이며 극작가이고, 무엇보다 **글을 ‘몸으로 쓰는 사람’**이다. 엘렌식수는 1937년, 프랑스령 알제리 오랑에서 태어났다. 유대계 여성으로 식민지의 공기를 마시며 성장했다. 이미 그 출발부터, 하나의 언어와 하나의 정체성으로는 도착할 수 없는 삶이었다. 엘렌 식수는 늘 경계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경계에서 글을 썼다.2. 그녀는 무엇을 문제 삼았는가식수가 평생 붙잡았던 질문은 단순하다. “왜 글은 늘 같은 목소리로 쓰여 왔는가?” 이 질문.. 2026. 1. 1. 세계는 잡음 속에서 온다: 단파(SW, Shortwave) 라디오 1. 단파 (SW, Shortwave) 라디오낡았지만 기능은 변하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이야기를 품게 되는 물건. 단파라디오는 그런 물건이다. 요즘 사람들은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세계와 연결되지만, 한때 우리는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는 전파 속에서 세계를 들었다. 단파라디오는 그 공기 속의 길, 먼 곳에서 날아온 목소리들이 좁은 금속 통 속으로 모여드는 기묘한 통로였다. 단파라는 말은 ‘파장이 짧은 전파’라는 뜻이다. 파장은 물결 하나가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의 길이를 말하는데, 이 길이가 짧을수록 더 높은 주파수를 갖는다. 그런데 짧은 파장은 특이한 성질이 있다. 지구 대기권의 전리층에 부딪히면 반사된다. 마치 너무 잘 튕겨 올라가는 농구공처럼, 전리층은 단파를 다시 지구 쪽으로 내려보.. 2025. 12. 12. 이전 1 ··· 4 5 6 7 8 9 10 ··· 3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