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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한 것이 정말 나의 말인가?": 카벨 오토마티즘(Cavellian Automatism) 1. 스탠리 카벨(1926–2018)카벨 오토마티즘(Cavellian Automatism)은 조금 복잡하고도 흥미로운 개념이다. 이 개념을 설명하려면 먼저 미국의 철학자이자 영화·문학 비평가였던 *스탠리 카벨(Stanley Cavell)**이라는 철학자부터 소개해야 한다. 카벨은 일상적 언어, 자기표현, 회의주의, 예술의 조건 등을 탐구한 인물이다. 그의 철학은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가?” “우리는 말한 것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가?” 같은 질문들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는 언제 정말로 말하고 있는가?” “내가 한 말이 내가 한 말이 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가?”라는 지점으로 나아간다.2. 오토마티즘(automatism)일반적으로 오토마티즘은 의식적 통제 없이 자동적으로 생성되는 예술적 .. 2025. 7. 29.
나를 참조하여 나로 되돌아가다: 재귀적 구조 1. 재귀적이란?“재귀적(再歸的, recursive)”이라는 개념은 처음 들으면 어려워 보이지만, 사실 우리 일상에도 숨어 있는 말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가는 것”, 또는 “자기 자신을 다시 참조하는 방식”을 의미한다.비유를 하자면 '거울 앞의 거울'인 것이다. 거울을 마주 보게 두면, 거울 속에 또 다른 거울이, 또 그 속에 또 다른 거울이 무한히 반복된다. 이게 바로 재귀적 구조이다. 거울이 자기 자신을 반사하는 구조, 즉 스스로를 비추는 방식인 것이다.2. 문학·예술에서의 “재귀성”문학이나 미술에서 “재귀적”이라는 말을 쓸 때는, 보통 작품이 자기 자신이 ‘작품’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방식을 말한다. 예를 들어, 소설 속 인물이 “이건 소설이야”라고 말할 때, 혹은 시가 “나는.. 2025. 7. 28.
인문학 이론의 뼈대를 이루는 개념들: '이항 대립'과 '패러다임' 1. 이항 대립 (Binary Opposition)이항 대립이란 건 말 그대로 둘로 나뉜 대립 구조를 말한다. 흑 vs 백, 남자 vs 여자, 자연 vs 문화, 중심 vs 주변, 정상 vs 비정상, 고급 vs 저급, 서양 vs 비서양 등 이처럼, 우리는 세상을 이해할 때 두 개의 상반된 개념을 만들어서 그 차이와 관계로 의미를 구성한다. 이건 그냥 말장난이 아니라, 우리가 언어를 쓰는 방식 그 자체에 박혀 있다. 이 개념을 정리한 대표적인 이론가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이다. 그는 언어의 구조를 연구하면서, 의미는 차이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했다. 즉, ‘좋음’은 ‘나쁨’이 있어야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후 *레비스트로스(구조주의 인류학자)*는 신화나 문화.. 2025. 7. 25.
회화란 무엇인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1.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클레멘트 그린버그(1909–1994)는 미국의 미술 비평가이다. 그는 잭슨 폴록, 바넷 뉴먼, 마크 로스코 같은 추상 표현주의 화가들의 중요성을 세상에 알린 사람이고, 특히 “모더니즘 회화는 이래야 한다”라고 소리치듯 썼던 평론들로 유명해졌다. 대표 글은 1960년의 「모더니즘 회화 Modernist Painting」라는 에세이가 있다. 이 사람을 빼고는 20세기 중반의 미술사를 논할 수 없다.특히 ‘그린버그식 모더니즘’이라고 하면, "회화란 무엇인가?"를 아주 단단하고 날카롭게 정의한 시도를 말한다. 그래서 때론 숨이 막히지만, 그래서 더 명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린버그식 모더니즘의 “모더니즘은 예술이 자신의 *고유한 매체 특성(medium s.. 2025. 7. 24.
진리란 무엇인가? 에피스테메(epistēmē) 1. 에피스테메(epistēmē)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철학사를 흔들어놓은 단어이자, 우리가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할 때 완전히 다른 눈을 뜨게 해주는 개념이다. 에피스테메란? 말 그대로 하자면, 그리스어 epistēmē(ἐπιστήμη)는 “지식”, “과학”, “앎”을 뜻한다. 철학사에서는 오래전부터 쓰인 단어이지만, 푸코는 이 말을 완전히 새롭게 정의했다.2. 푸코식 정의“에피스테메는 어떤 시대에 지식들이 형성되고 작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무의식적 구조이다.” 조금 더 쉽게 풀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한 시대에 사람들이 무엇을 ‘지식’이라고 인정할 수 있었는지를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규칙들.”이라고 말이다.예를 들어, 오늘날 우리는 “감기”를 바이러스로 설명하고,.. 2025. 7. 23.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틀: 아프리오리(a priori) 1. 역사적 아프리오리(historical a priori)“역사적 아프리오리(historical a priori)”는, 정신이 빙그르르 회전할 수도 있는 개념이지만, 사실은 아주 간단한 질문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든 조건은 무엇일까?” “그 조건은 고정되어 있는가, 아니면 변하는가?” 이 개념을 제대로 설명한 사람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다.2. 아프리오리(a priori)란?원래 철학에서 “아프리오리”란 경험하기 전에 이미 주어진 지식이나 조건을 말한다. 예를 들어 “1+1=2”는 경험하지 않아도 아는 진리다. “모든 사건에는 원인이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칸트(Kant)"는 이 개념을 아주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는 “우리가 세상을 인식.. 2025. 7.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