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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이론의 뼈대를 이루는 개념들: '이항 대립'과 '패러다임' 1. 이항 대립 (Binary Opposition)이항 대립이란 건 말 그대로 둘로 나뉜 대립 구조를 말한다. 흑 vs 백, 남자 vs 여자, 자연 vs 문화, 중심 vs 주변, 정상 vs 비정상, 고급 vs 저급, 서양 vs 비서양 등 이처럼, 우리는 세상을 이해할 때 두 개의 상반된 개념을 만들어서 그 차이와 관계로 의미를 구성한다. 이건 그냥 말장난이 아니라, 우리가 언어를 쓰는 방식 그 자체에 박혀 있다. 이 개념을 정리한 대표적인 이론가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이다. 그는 언어의 구조를 연구하면서, 의미는 차이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했다. 즉, ‘좋음’은 ‘나쁨’이 있어야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후 *레비스트로스(구조주의 인류학자)*는 신화나 문화.. 2025. 7. 25.
회화란 무엇인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1.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클레멘트 그린버그(1909–1994)는 미국의 미술 비평가이다. 그는 잭슨 폴록, 바넷 뉴먼, 마크 로스코 같은 추상 표현주의 화가들의 중요성을 세상에 알린 사람이고, 특히 “모더니즘 회화는 이래야 한다”라고 소리치듯 썼던 평론들로 유명해졌다. 대표 글은 1960년의 「모더니즘 회화 Modernist Painting」라는 에세이가 있다. 이 사람을 빼고는 20세기 중반의 미술사를 논할 수 없다.특히 ‘그린버그식 모더니즘’이라고 하면, "회화란 무엇인가?"를 아주 단단하고 날카롭게 정의한 시도를 말한다. 그래서 때론 숨이 막히지만, 그래서 더 명쾌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린버그식 모더니즘의 “모더니즘은 예술이 자신의 *고유한 매체 특성(medium s.. 2025. 7. 24.
진리란 무엇인가? 에피스테메(epistēmē) 1. 에피스테메(epistēmē)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철학사를 흔들어놓은 단어이자, 우리가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할 때 완전히 다른 눈을 뜨게 해주는 개념이다. 에피스테메란? 말 그대로 하자면, 그리스어 epistēmē(ἐπιστήμη)는 “지식”, “과학”, “앎”을 뜻한다. 철학사에서는 오래전부터 쓰인 단어이지만, 푸코는 이 말을 완전히 새롭게 정의했다.2. 푸코식 정의“에피스테메는 어떤 시대에 지식들이 형성되고 작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무의식적 구조이다.” 조금 더 쉽게 풀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한 시대에 사람들이 무엇을 ‘지식’이라고 인정할 수 있었는지를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규칙들.”이라고 말이다.예를 들어, 오늘날 우리는 “감기”를 바이러스로 설명하고,.. 2025. 7. 23.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틀: 아프리오리(a priori) 1. 역사적 아프리오리(historical a priori)“역사적 아프리오리(historical a priori)”는, 정신이 빙그르르 회전할 수도 있는 개념이지만, 사실은 아주 간단한 질문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든 조건은 무엇일까?” “그 조건은 고정되어 있는가, 아니면 변하는가?” 이 개념을 제대로 설명한 사람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다.2. 아프리오리(a priori)란?원래 철학에서 “아프리오리”란 경험하기 전에 이미 주어진 지식이나 조건을 말한다. 예를 들어 “1+1=2”는 경험하지 않아도 아는 진리다. “모든 사건에는 원인이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칸트(Kant)"는 이 개념을 아주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는 “우리가 세상을 인식.. 2025. 7. 22.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본다"- 즉자주의(卽自主義) 1. 즉자주의란?“즉자주의”라는 말은 좀 낯설게 들릴 수 있지만, 사실 그 속엔 꽤 뾰족하고 중요한 미학적 태도가 들어 있다. 간단히 말해,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태도, 그게 바로 "즉자주의(卽自主義)"다. 다른 말로 하면 “해석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고, 그냥 보자”라는 뜻이다. 좀 더 풀어보면 “즉자(卽自)“는 ‘곧 자기 자신’이라는 뜻이다. 무언가를 볼 때, 그것을 무엇의 상징이나 은유로 보지 않고, 그 자체로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즉자주의다. 예를 들어, 햇빛이 창문을 통과해 방바닥에 떨어진다고 하자. 즉자주의자는 그 빛을 “희망의 상징”이라거나 “죽은 엄마가 남긴 어떤 환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냥 빛일 뿐이다. 그 자체로 충분한 어떤 것이다.2. 예술에서 즉자주의예술.. 2025. 7. 21.
예술이 스스로를 설명할 때: 자기-정의(self-definition) 1. 예술이 자기 자신을 의식하고, 그 재료와 형식을 드러내는 방식니체(Friedrich Nietzsche)가 말한 “투명한 단단함(luminous con- creteness)"은 모순처럼 들리지만 사실 아주 시적인 말이다. 투명하다는 건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는 뜻이고, 단단하다는 건 물리적으로, 감각적으로 두드러진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즉, 이건 보기에는 안 보이는 것 같지만, 아주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물질성으로 거기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유리창은 투명해서 그 너머를 보여주지만, 닦으면 뽀드득, 두드리면 똑똑 소리가 나는 단단한 물질이다. 회화도 마찬가지이다. 그림은 어떤 풍경이나 사람을 보여주려고 하지만, 그 자체로 물감, 붓질, 캔버스의 물성이 보이게 된다. ‘투명하게’ 무.. 2025. 7.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