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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온도를 느끼는 일: 대중 예술 속 현상학 1. 현상학 Phenomenology 現象學어느 날 퇴근길, 커피를 들고 골목을 걷다 멈춰 선 적이 있다. 바람이 불어 종이컵의 표면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 작은 진동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때 문득 ‘지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어졌다. 현상학은 바로 그런 물음에서 시작한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후설(Edmund Husserl)이라는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물 그 자체로 돌아가라.” 그는 철학이란 머릿속의 추상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만나는 세계의 경험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복잡하게 들리지만, 사실 일상의 단순한 감각 속에 있다. 누군가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 음악을 듣는 일, 우리는 늘 어떤 ‘대상’을.. 2025. 11. 3.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Hot in Day, Cold at Night, 2021): 너와 나의 온도 1.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Hot in Day, Cold at Night)"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라는 제목은 단순한 날씨 묘사 이상을 말한다. 낮의 더위는 일상에서 견디는 삶의 긴장감, 밤의 추위는 삶이 놓인 빈 공간 혹은 외로움의 온도처럼 다가오는 감각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자체가 버티기처럼 느껴지는 시대에 놓여 일자리 불안정, 소비 압박, 관계의 빈도와 기대 사이의 간극 등 삶을 흔드는 요인들을 무대 위로 조용히 올려놓는 작품이다.2. 줄거리영태와 정희는 부부다. 영태는 일용직을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정희 또한 살림을 책임지며 여러 아르바이트를 거치고 그럼에도 쪼들리는 살림 사이에서 긴장감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정희 어머니의 생일이 다가오고 다른 형제들은 선물로 돈을 가져.. 2025. 10. 27.
절해고도(A Lonely Island in the Distant Sea): 너라는 섬에 가고 싶다 1. 절해고도(A Lonely Island in the Distant Sea)누군가는 멀어지고, 누군가는 홀로 서게 되며,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자기 존재가 어쩐지 외딴섬처럼 느껴질 때가 많은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영화는 그런 시대에서 느끼는 고립감과 거리감, 그리고 그 안에서의 재생과 관계를 조용히 탐구하는 영화다. 사실상 중년의 삶, 부녀 관계, 예술인으로서의 자아, 출가와 선택, 그리고 타인과의 거리라는 키워드들을 겹치며 천천히 울림을 만들어 간다. 2. 줄거리윤철은 한때 젊은 조각가로 기대를 받았지만, 이혼 이후 생계 잇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의 딸인 지나는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듯 미술적 재능을 보이지만, 미대를 준비하다 말고 출가를 선언해 스님이 되는 삶을 택한다. 대학 강사인 영지와.. 2025. 10. 24.
성적표의 김민영(Kim Min-young of the Report Card): 함께 있을 때, 우린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1. 성적표의 김민영 (Kim Min-young of the Report Card)공동 연출을 맡은 이재은 감독과 임지선 감독은 둘 다 단편을 통해 이미 감수성과 디테일 있는 인물 간 관계에서 주목을 받아왔고, 이 작품으로 장편 데뷔를 훌륭하게 해냈다. 이 영화는 졸업 이후, 전국 각지로 흩어진 청춘들이 자기 자신과 서로의 거리감을 불편하게 느끼며, “우리 정말 영원할까?”라는 질문을 속으로 던지는 시간들을 그린다. 2. 줄거리정희와 민영 그리고 수산나는 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하며 서로의 일상을 나누는 친구가 된다. 어느덧 그들 역시 졸업을 맞게 되고 세 사람은 각자의 길로 흩어진다. 민영은 대학에 입학하고, 수산나는 유학을 가고, 정희는 아르바이트하며 지내게 된다. 이제 그들은 자주 만나진 못하지만,.. 2025. 10. 22.
괴인 (A Wild Roomer): 우리는 모두 괴물이다 1. 괴인 (A Wild Roomer)괴인은 기이한 사람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괴인이 될 수도 있지만, 자신이 스스로를 괴인이라고 느낄 수는 없는 경계 그 사이 어디쯤을 서성거리는 존재다. 팬데믹 후 우리는 일상에서 여러 균열을 목격했다. 지연되고, 어긋나고, 기대와 현실이 달라지는 것을 보며 균열들이 얼마나 쉽게 일상에 침투하는가를 보여주는 영화다.2. 줄거리주인공은 작은 인테리어 공사 일을 하며 일상을 꾸려가는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세워 둔 차 지붕이 찌그러진 걸 보게 된다. 공사 중이던 장소 앞에 세워둔 차였고, 그 위로 누군가 뛰어내렸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집주인은 범인을 찾자며 주인공을 부추기고 주인공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한다. 차 지붕이 찌그러진 사건 이후 주인공의 일상에.. 2025. 10. 20.
다섯 번째 흉추 (The Fifth Thoracic Vertebra) :버려진 침대에서 피어나는 기억 1. 다섯 번째 흉추_The Fifth Thoracic Vertebra"다섯 번째 흉추"는 시대의 불안, 폐허와 잔재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는가를 묻는 영화다. 영화는 호러와 괴생명체의 몸, 감정의 외피가 뒤틀리는 초현실적 풍경이 혼합돼 있다. 관계 뒤에 남은 말과 상처, 약속과 저주 같은 묵직한 무게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게 영화는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2. 줄거리버려진 침대에서 곰팡이가 피어난다. 이 침대는 관계가 끝난 후 남은 것들 가령 버리기 힘든 것들, 말로 다 못한 감정들, 저주, 약속 희망 혹은 절망의 파편들의 숙주가 되어 어느 순간, 곰팡이에서 괴생명체가 태어난다. 이 생명체는 단순히 곰팡이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섯 번째 흉추"를 먹는 존재다. 흉추.. 2025. 10.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