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에피스테메(epistēmē)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철학사를 흔들어놓은 단어이자, 우리가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할 때 완전히 다른 눈을 뜨게 해주는 개념이다. 에피스테메란? 말 그대로 하자면, 그리스어 epistēmē(ἐπιστήμη)는 “지식”, “과학”, “앎”을 뜻한다. 철학사에서는 오래전부터 쓰인 단어이지만, 푸코는 이 말을 완전히 새롭게 정의했다.
2. 푸코식 정의
“에피스테메는 어떤 시대에 지식들이 형성되고 작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무의식적 구조이다.” 조금 더 쉽게 풀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한 시대에 사람들이 무엇을 ‘지식’이라고 인정할 수 있었는지를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규칙들.”이라고 말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 우리는 “감기”를 바이러스로 설명하고, 그에 맞춰 진단하고, 약을 처방한다. 하지만 16세기 사람들은 감기를 몸속 액체의 불균형이나 하느님의 징벌로 이해했다. 이런 인식의 차이는 단순한 과학 지식의 진보가 아니라, 그 시대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지식화’할 수 있었는가, 그 지식의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푸코는 바로 그 조건, 즉 어떤 것을 말할 수 있게 만드는 틀 자체를 에피스테메라고 불렀다.
3. 에피스테메 vs 패러다임
비슷한 말로 *토머스 쿤(Thomas Kuhn)*의 “패러다임(paradigm)”이 있다. 에피스테메는 시대 전체의 지식 조건을 구성하는 무의식적 틀이고 철학적, 고고학적, 탈역사적 등의 특징이 있다. 패러다임은 과학 공동체가 공유하는 이론적 틀이다. 과학적, 역사적, 전환 가능한 틀이라는 특징이 있다.
푸코는 에피스테메를 ‘건물의 기초’라고 생각했다. 학자들은 건물을 짓고, 방을 꾸미고, 그 방에 그림을 건다. 하지만 그 밑에 있는 ‘기초 구조물’, 즉 어떤 방식을 ‘지식’으로 인정할 수 있는 조건 자체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푸코는 바로 그 기초를 드러내는 작업, 즉 ‘지식의 고고학’을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푸코는『말과 사물』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었고, 지금도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어떤 절대 진리나 보편 이성 대신, 지식의 조건조차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받아들이자는 뜻이다. 이게 바로 포스트구조주의적 태도이다.
4. 마치며
에피스테메(episteme)는 시대마다 지식이 형성되고 작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무의식적인 인식 구조를 의미하고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가 말했다. 이 개념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아는 ‘진리’도 시대가 허락한 방식일 뿐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에피스테메를 안다는 건, “내가 옳다”는 말보다 “왜 이걸 옳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는가?”를 묻는 태도로 나아간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