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200 나무와 돌의 숨결을 깨우는 영원한 이방인: 김윤신 조각가 1. 나무와 돌의 숨결을 깨우는 영원한 이방인: 김윤신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 그녀의 조각은 나무와 돌이라는 단단한 물질 속에 숨겨진 우주의 원형을 끄집어내는 집요한 대화의 산물이며,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장엄한 서사시를 이룬다. 그것은 단순히 정교하게 깎인 목재가 아니라 수십 년의 세월을 견뎌온 생명체가 작가의 거친 손길을 만나 내뱉는 깊은 숨결처럼 느껴진다. 1935년 강원도 원산에서 태어난 김윤신은 1959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각과를 졸업하며 한국 현대 조각의 태동기에 본격적인 발을 내디뎠다. 그녀는 1964년부터 1969년까지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인 보자르(Beaux-Arts de Paris)에서 수학하며 서구 현대 조각의 정수를 흡수했고, 귀국 후 한국여류조각가회를 창립하는.. 2026. 2. 6. 버려진 것들이 일구는 눈부신 연대: 엘 아나추이(El Anatsui)의 빛나는 유목 1. 버려진 것들이 일구는 눈부신 연대: 엘 아나추이( El Anatsui)런던 테이트 모던의 거대한 터바인 홀을 메우고 있던 황금빛 물결, 멀리서 보면 중세 귀족의 화려한 태피스트리나 고귀한 비단 커튼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드러나는 실체는 단단하고 차가운 금속이다. 그것은 버려진 술병의 알루미늄 뚜껑들을 구리선으로 엮어 만든 거대한 조각이다. 가나 출신의 거장 엘 아나추이(El Anatsui)의 작업은 이처럼 시각적 화려함 뒤에 서늘한 역사적 통찰과 사회학적 비유를 숨기고 있다. 그의 작업은 단순한 조형물을 넘어, 인간의 욕망과 역사의 상흔을 꿰매는 장엄한 의식으로 다가온다.2. 안요코에서 세계로 흐르는 예술적 여정엘 아나추이는 1944년 가나의 안요코에서 태어나 쿠마시 과학기술대학교에서 미술.. 2026. 2. 4. 죽음을 박제한 쇼맨,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 1. 죽음을 박제한 쇼맨, 데미언 허스트: 포름알데히드 속에서 길어 올린 삶의 질문가끔 미술관 한복판에서 거대한 상어와 마주칠 때가 있다. 살아있는 바다의 포식자가 아니라, 투명한 유리 탱크 안, 푸른 용액 속에 갇혀 영원히 멈춰버린 상어다. 20년 넘게 현대미술의 수행성과 자본의 맥락을 연구해 온 나에게도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의 작품은 여전히 서늘한 당혹감을 준다. 그는 예술가인가, 아니면 그저 영리한 비즈니스맨인가? 그는 생명을 존중하는가, 아니면 죽음을 전시하며 돈을 버는 냉혈한인가? 오늘은 영국 현대미술의 지형을 완전히 바꿔놓은 ‘무서운 아이’, 데미언 허스트의 세계를 탐험하며, 우리 시대가 왜 이 잔혹한 쇼맨에게 열광했는지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2. 리즈의 불량소년, .. 2026. 2. 2. 내 몸이 그리는 선, 그 낯설고도 아름다운 논리: 이건용의 실험미술 1. 한국 실험미술의 살아있는 기록: 이건용 (Lee Kun-Yong)이건용은 1942년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평양에서 목회 활동을 하던 목사였고, 서재에는 수많은 장서가 가득했다. 어린 시절부터 탐독했던 철학, 종교, 문학 서적들은 훗날 그가 '논리적'이고 '개념적'인 미술을 개척하는 지적 자양이 되었다. 한국전쟁 중 월남하여 서울에 정착한 그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에 입학한다. 하지만 그는 당시 화단을 지배하던 추상화(앵포르멜)의 거친 붓질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왜 그림은 꼭 캔버스를 마주 보고 그려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캔버스 밖의 실제 세계와 인간의 신체로 눈을 돌렸다. "예술가가 캔버스를 보지 않고 그림을 그린다면, 그것은 실패작일까 아니면 .. 2026. 1. 30. 물건이 없는 미술관의 당혹감: 티노 세갈(Tino Sehgal) 1. 물건이 없는 미술관의 당혹감: 티노 세갈(Tino Sehgal)티노 세갈은 1976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지만, 주로 독일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다. 그의 이력을 보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예술가의 길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대학에서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과 **무용(Conceptual Dance)**을 전공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두 학문의 만남이 바로 세갈 예술의 뿌리다. 현대 사회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생산하고 소유하는 '물질주의' 위에 세워져 있다. 미술 시장 역시 작품이라는 '물건'이 거래되는 거대한 유통망이다. 하지만 티노 세갈은 이 견고한 시스템에 균열을 낸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비물질성(Immateriality.. 2026. 1. 28. 모든 인간은 ‘여성’이라는 파격: 안드레아 롱 추(Andrea Long Chu)의 《피메일스Females》 1. 안드레아 롱 추(Andrea Long Chu)의 《피메일스 Females》안드레아 롱 추가 말하는 ‘여성(Female)’은 우리가 흔히 아는 생물학적 성별(Sex)이나 사회적 성별(Gender)의 카테고리를 훌쩍 넘어선다. 그녀에게 여성성이란 하나의 존재론적(Ontological) 위치다. 이 책은 단순히 페미니즘 이론서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거울이자,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여성성’과 ‘욕망’의 구조를 해체하는 날카로운 수술칼이다. 안드레아 롱 추가 던지는 메시지는 간결하면서도 충격적이다. “모든 사람은 여성이다. 그리고 대개는 그 사실을 싫어한다.” 이 도발적인 문장에서 시작되는 긴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자. 추의 이론에서 ‘여성’이란 **“타자의 욕망을 위한 그릇이.. 2026. 1. 26. 이전 1 2 3 4 ··· 3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