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79

"먹는 것이 죄라면: <신성일의 행방불명> 속 억압과 해방" 1. 신성일의 행방불명(2006) Shin Sung Il Is Missing2004년, 한국 영화계는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진통을 겪고 있었다.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들이 극장가를 장악하는 한편, 독립영화는 제한된 자원 속에서도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이러한 시기에 등장한 신재인 감독의 첫 장편영화 《신성일의 행방불명》은 독특한 소재와 표현 방식으로 주목을 받았다. 2. 신재인 감독신재인 감독은 영화아카데미 재학 중 발표한 단편영화 《재능 있는 소년 이준섭》과 《그의 진실이 전진한다》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그의 작품은 상업성과 예술성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특한 감각으로 평가받았다. 《신성일의 행방불명》은 그의 첫 장편영화로,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되어 당시 독립영화계에 신.. 2025. 5. 9.
그해 겨울, 카메라를 든 청춘 <마이 제너레이션> 1. 마이 제너레이션 my generation (2004)노동석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청춘의 현실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그는 사람을 잘 느끼는 감독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를 뛰어나게 연출했다기보다, 인물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했다. 그렇기에 관객은 병석과 재경의 삶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영화는 흑백으로 촬영되었다. 색이 없는 화면은 두 사람의 삶을 더욱 쓸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카메라 속에 담긴 장면은 컬러로 바뀌었다. 현실은 무채색이지만, 꿈은 색을 가지고 있었다. 2. 줄거리서울의 겨울은 유난히 차가웠다. 바람은 뺨을 스치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빠르게 지나갔다. 그 속에서 병석은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결혼식 비디오를 찍고, 갈빗집에서 숯불을 피우며, 도로변에서 성인용품을 팔기도 했다. 그.. 2025. 5. 8.
"두 여자의 방, 몸의 기억: 김진아 감독의 영화 <그 집 앞> 1. 그 집 앞 (2003)그녀는 조용히, 그러나 깊게 말한다. 김진아 감독의 첫 극영화 『그 집 앞』은 속삭임처럼 시작되어, 마음 깊은 곳에 잔잔한 파문을 남긴다. 이 영화는 두 여성, 가인과 도희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의 내면과 몸의 기억을 섬세하게 그려낸다.2. 김진아 감독김진아 감독은 서울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미국 칼아츠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 『김진아의 비디오일기』를 통해 주목을 받았으며, 『그 집 앞』은 그녀의 첫 극영화로, 여성의 몸과 욕망, 내면의 심리를 탐구하는 작품이다.3. 그 집 앞 속 두 여자가인(최윤선)은 미국에 거주하는 유학생으로, 거식증을 앓으며 집안에 칩거한다. 그녀는 남자친구 희수(정찬)와의 이별 후,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 2025. 5. 7.
"조용한 눈물, 그리고 63년: <송환>과 두 개의 시간" 1. 영화 Repatriation그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세월이 목소리를 앗아간 것도 있었고, 이야기라는 것이 그들의 삶에서 너무 오래 금지된 것이기도 했다. 카메라 앞에 앉은 노인의 눈동자는, 어딘가 아주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멀고도, 아주 가까운 북쪽. 은 그 눈동자를 따라가는 영화다.2. 김동원 감독이 영화를 만든 사람은 김동원 감독이다. 그는 다큐멘터리 영화계에서 오랜 시간 묵묵히, 깊이 있는 작업을 해온 사람이다. , 같은 작품을 통해 이 땅의 노동자, 빈민, 소수자들의 삶을 기록해 왔다. 그는 늘 말보다 가까이 있었고, 카메라는 그저 곁에 머물렀다. 김동원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나는 그저 카메라를 들고 있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 카메라는, 세상에서 가.. 2025. 5. 6.
일제강점기 소설 이야기: 채만식과 이태준을 읽다 1. 기울어진 세상을 바라보는 눈세상이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발을 땅에 딛고 서 있어도 자꾸만 미끄러진다. 손으로 벽을 짚어봐도, 벽마저 흔들린다. 그게 바로 일제강점기였다. 나라를 잃고, 말도 억눌리고, 삶은 부서진 유리조각 같았다. 이때, 부서진 조각들을 자세히 들여다본 사람들이 있다. 채만식과 이태준. 그들은 가짜 희망 대신, 삐걱대는 현실을 정직하게 그렸다.2. 냉소와 연민 사이에서, 채만식채만식(1902-1950)은 웃으면서 칼을 드는 작가였다. 그가 그리는 세상은 헛웃음이 절로 나는 풍경이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사람들은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대표작 〈태평천하〉를 보면, 한 귀족 집안이 시대의 변화를 전혀 알지 못한 채 멍청하게 몰락해 가는 모습을 그린다. 웃기지만, 그 웃음 끝에는 뻐근한.. 2025. 5. 5.
어린이라는 말이 태어난 순간: 방정환 이야기 1. 어린이의 눈높이로 본 세상: 방정환 이야기바람은 늘 어른들을 향해 불었다. 키 작은 사람들은 먼지를 뒤집어쓰며 눈을 찡그렸다. 아무도 그들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다. 방정환(1899-1931)은 그 작은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너희는 존중받아야 해.”2. 어린이라는 말을 만든 사람우리가 지금 자연스럽게 쓰는 ‘어린이’라는 단어, 그걸 처음 만든 사람이 바로 방정환이다. 그전까지, 아이들을 부를 때 ‘애들’, ‘애새끼’, ‘꼬마’ 같은 말을 썼다. 존중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말이었다. 방정환은 생각했다. “아이들도 하나의 온전한 사람이다.” 그래서 ‘어리다’는 말에 존귀함을 담아 ‘어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런 생각은 ’.. 2025. 5.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