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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의 운율과 흐름: 한국 시의 리듬 1. 한국 시의 운율과 흐름시를 읽을 때 우리는 먼저 소리를 듣는다. 목소리가 아니라, 마치 잔잔한 파도가 손톱 끝으로 스치는 것 같은 심상을 듣는 것이다. 시인의 문장은 파도처럼 우리 안의 물결을 건드린다.전통시는 일종의 음악과 시의 혼종이다. 근대에 들어와 시는 형식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한용운, 이상, 윤동주 등 전통의 음률을 물려받았지만, 그 구조 안에서 의미를 새로 만들기 시작한 시인들이다. 윤동주의 「서시」를 떠올려보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직선의 호흡이지만, “한 점”에서 숨이 멈췄다 흘렀다,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것은 마치 걸음을 멈춘 나무 한 그루처럼 보인다. 노래인지 한숨인지 모를 듯, 끝내 호흡의 진동으로 남았다. 2. 대표 작품윤동주의「서시」는.. 2025. 7. 4.
글로벌 시대의 한국 문학: 번역과 해외 반응 1. 글로벌 시대 한국 문학의 말과 번역이제 문장은 국경을 넘는다. 어떤 문장은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바람을 타고 떠나고, 어떤 문장은 잔잔한 호수에 녹아 스며들듯 오래 회자되며 멀리 나아간다. 최근 십 년 사이, 한강의『채식주의자』와『소년이 온다』,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 또 황정은, 공지영, 정유정, 김숨 같은 작가들의 작품이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었다.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작으로 선정된 한강의『채식주의자』는 영국 독자들에게 “서늘하고, 이상한, 너무 아름답게 괴로운 이야기”라는 반응을 얻었다. 그 수상 소식에 “한국 문학은 이제 ‘낯섦’의 정수에 닿았다”는 평도 따라왔다. 일부 독자는 “이 이야기, 이 고통의 언어는 너무 한국적이라 문장이 아프다 느껴진다.”고도 했다.번역을 통해 한국.. 2025. 7. 3.
한국 문학과 대중문화의 만남: 소설을 영화로 1. 문장이 스크린 위를 걷는 순간그들은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고, 문장을 적었다. 적지 않고, 가만히 침묵 속에서 기다렸다. 그러나 언젠가, 그 문장들이 몸을 얻고, 스크린 위를 걸어 나올 날이 올 줄은 아마 그들도 몰랐을 것이다. 한국 문학이 대중문화와 마주한 것은 하루아침의 일은 아니었다. 문장이 두 번째 생을 얻는 일은 종종 있었다.2. 한국 문학과 대중문화의 조우조선이 무너지고 있었다. 김훈 작가가 쓴『남한산성』의 인물들은 말을 아끼며, 고개를 떨구었다. 김훈의 문장은 삭풍처럼 날카롭고, 묵은 나무처럼 서걱거린다. 황동혁 감독은 이 소설을 영화로 옮기며 그 절망을 더 깊이 끌어올렸다. 조선의 겨울은 고요했고, 그 고요는 굶주림보다도 더 매서웠다. 그들은 눈 위에 말의 발자국을 남겼다. 그러나.. 2025. 7. 2.
한국 문학에서 전쟁을 쓰는 방식: 전쟁과 트라우마 1. 한국 문학의 전쟁과 트라우마 서사 늘 그랬다. 한 사람이 겪은 전쟁은 종이 위로는 번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조용히 국수를 말았고, 또 누군가는 아이를 업었다. 그러나 땅 밑 어딘가, 아직도 굳지 못한 흙처럼, 트라우마는 소리를 삼키며 퍼지고 있었다. 총성과 함께 기억이 뚫렸고, 그 구멍은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끝내 아물지 않는 창문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다. 기억은 정말 하나의 선으로 엮이는 걸까. 아니면 그것은, 찢어진 신문 조각처럼 흩어진 다음, 거리 곳곳에서 신발에 달라붙는 형태로만 비로소 ‘남게 되는’ 것일까. 전쟁은 국가의 이름으로 시작되지만, 고통은 이름을 가릴 것 없이 아니 이름 없이도 퍼진다. 그러므로 전쟁 문학이란 아직 붙잡지 못한 감정들의 흐름을 기록하려는 시도였을 것이다.2... 2025. 7. 1.
정착하지 못한 감정: 한국 문학 속 디아스포라 1. 한국 문학 속 디아스포라와 이주민의 서사밤이면 밤대로, 낮이면 낮대로 사람은 어디론가 떠나야 했다. 누군가는 먹고살기 위해, 또 누군가는 버거운 기억이나 상처를 버리려고 그리고 또 누군가는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 하나만으로 ‘떠났다’고 적었다. 문학에서 그 ‘떠남’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지금 우리는 그걸 ‘디아스포라’라고 부르기도 한다.2. 디아스포라‘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단어는 원래 고향을 떠나 다른 나라에 흩어져 살아가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하지만 한국 문학에서 이 말은 단지 지리적 이동만을 뜻하지 않는다. 가슴속에 오래 눌러 담은 감정들, 정체성을 드러내 묻고 싶은 마음, 돌아갈 곳이 있음에도 돌아가지 못하는 복잡한 감정들이 함께 실려 있다. 그러니까 디아스포라는 몸이.. 2025. 6. 30.
오토픽션(autofiction): 자아와 허구의 경계에서 1. 오토픽션(autofiction)오토픽션(autofiction)은 자전적 서사와 허구적 상상이 모호하게 얽히는 문학 장르다. 1977년 프랑스 작가 세르주 뒤브로프스키(Serge Doubrovsky)가 자신의 작품 le Fils를 ‘자전이지만 진실에 얽매이지 않는 소설’로 정의하면서 처음 사용한 용어다. 그는 “진실보다 더 진실 같은 글쓰기”를 시도했고, 이 개념은 이후 21세기 문학에서 폭발적인 확장을 보였다. 한마디로, 오토픽션은 ‘나’를 말하면서도 ‘나’를 가장하는 문학이다. 진실을 말하는 동시에, 그 진실을 문학적으로 꾸며낸다는 점에서 윤리와 허구, 고백과 연기가 교차하는 장르다. 오토픽션이 중요한 이유는 이 장르가 단순히 자기 고백의 수단이 아니라, 자기 고백을 문학적으로 재구성하는 방식.. 2025. 6.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