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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칭, 3인칭, 그 사이를 걷는 문장들: 한국 문학에서 시점 1. 시점이라는 문학적 렌즈문학에서 ‘시점’이란, 이야기를 누구의 눈으로, 누구의 목소리로 보는지 결정하는 렌즈다. 1인칭(나), 3인칭(그/그녀), 전지적 작가 시점(모두 아는 신), 그리고 때론 ‘혼잣말처럼’ 되어버린 흐릿한 시점까지… 선택하는 시점에 따라 이야기는 눈빛과 눈물, 심지어 냄새까지 달라진다. 이 개념을 체계화한 사람은 러시아 형식주의 연구자이자 서사 이론가인 블라디미르 프로프와 게랄트 게나트 같은 이들이다. 그중에서도 미국의 내러티브 이론가 제럴드 프래터는 ‘시점에 따라 독자가 사건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감정 이입을 하는지’를 명확히 구분했다. 2. 한국 문학의 시점 탐색처음 1인칭은, 마치 손 편지 같은 친밀함을 줬다. 예컨대 이태준의「해방 전후」에서는 ‘나’를 중심으로 일상의 .. 2025. 7. 11.
한국 소설의 목소리 교차점들: 다성성(폴리포니) 1. 폴리포니란 무엇인가?폴리포니(polyphony)는 간단히 말하면 ‘여러 목소리가 동시에 울리는 노래’요, 소설로 치면 여러 인물들이 각각 자기 목소리로 말하는 구조이다. 러시아 작가 미하일 바흐친이 이 개념을 철학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진짜 소설은 단일한 작가의 시선만이 아니라, 인물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서로 부딪치고 공명할 때 완성된다”라고 말했다. 바흐친은 소설이 작가의 독백이 아니라, 인물들의 대화라고 본 것이다. 서로 부딪히고, 충돌하고, 때로는 사라지고, 다시 튀어나오기도 하는 인물들의 ‘합창’ 말이다. 그 소리가 폴리포니다. 단 한 사람의 음정만 있는 건 칸타타가 아니라, 그냥 허전한 멜로디일 뿐이다.2. 한국 소설에서 폴리포니한국 소설에서도 여러 목소리를 섞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선 .. 2025. 7. 10.
한국 문학 속 은유적 표현: 상징과 알레고리 1. 은유, 상징, 알레고리말과 의미 사이에는 늘 틈이 있다. 우리가 “사랑”이라고만 말하면 너무 단순하고 낡은 느낌이다. 하지만 “쨍한 레모네이드빛으로 혀끝이 쓰라린 느낌”이라 하면, 마음이 저릿하다. 그 틈에 들어가는 게 은유(metaphor)다. 은유는 ‘A를 B처럼 말하는 것’이며, 상징(symbol)은 ‘한 사물이나 이미지가 다른 깊은 뜻을 담는 것이다. 알레고리(allegory)는 그걸 더 길게, 하나의 이야기처럼 확장시킨 것이다. 한마디로 은유는 ‘짤막한 퍼즐’, 상징은 ‘숨겨진 보물지도’, 알레고리는 ‘보물섬까지의 긴 항해’라고 할 수 있다. 조지프 캠벨과 클레어 패밀리의 따르면, 모든 이야기는 ‘숨겨진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장치이며, 이는 인간이 뿌리 깊게 공유하는 심리적 본능이라고 .. 2025. 7. 9.
전통 서사 구조와 한국 현대 소설 1. 전통 서사와 한국 현대 소설의 리듬전통 서사는 오래된 나무의 휘어진 가지 같다. 수백 년을 견디며 세월과 바람, 세상의 무게를 품고 있지만 늘 마지막엔 다시 열매를 맺기 위해 솟아오른다. 한국 소설도 그 가지 위에서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고, 떨어지며, 다시 자라는 과정을 겪었다. 우리의 문학은 끊임없이 전통을 딛고, 그 위에서 현대를 새로 쓸 방법을 찾았다.2. 전통 서사 구조의 흐름전통 소설, 예컨대 김만중의『구운몽』이나 허균의『홍길동전』에는 서두–전개–위기–절정–결말의 다층적인 흐름이 있다. 그 구조는 시간이 직선처럼 이어지지 않고, 마치 산과 골짜기처럼 올랐다가 내려오는 굴곡으로 읽혔다. 그 서사의 힘은 전지적 시점보다는 인물의 삶의 질료에 더 집중한다. 길동의 모험, 정초의 꿈꾸기, 각 인물.. 2025. 7. 8.
말은 없지만 존재하는 목소리: 소설 속 서술자 1. 서술자서술자는, 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이야기를 쓰는 순간마다 창문을 닦고, 그 창문 너머로 우리가 서 있는 방까지 희미하게 그림자를 드리우는 존재이다. 한국 소설 속 서술자는 물 위에 떠 있는 연꽃처럼, 말하지 않아도 물결이 일면 이미 존재감을 전한다. 2. 시선의 시점들가장 친숙한 서술자는 부분적으로 전지적 전능자의 눈을 가진 목소리, 전지적 작가 시점이다.『감자』의 그 잔잔한 문장처럼 “그녀는 알았으리라”라고 한 줄 읊으며, 인물의 속마음 전체를 훑어버린다. 그러나 한국 소설에는 때로 전지적 시선 대신 마디마디 호흡하듯 턱 걸리는 ‘나’가 있다. 이 1인칭 서술자는 결정되지 않은 존재를 서술하며 서술 자체가 흔들리는 사람임을 드러낸다. 더 나아가 서술자는 단일한 존재가 아니기도 하다... 2025. 7. 7.
한국 시의 운율과 흐름: 한국 시의 리듬 1. 한국 시의 운율과 흐름시를 읽을 때 우리는 먼저 소리를 듣는다. 목소리가 아니라, 마치 잔잔한 파도가 손톱 끝으로 스치는 것 같은 심상을 듣는 것이다. 시인의 문장은 파도처럼 우리 안의 물결을 건드린다.전통시는 일종의 음악과 시의 혼종이다. 근대에 들어와 시는 형식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한용운, 이상, 윤동주 등 전통의 음률을 물려받았지만, 그 구조 안에서 의미를 새로 만들기 시작한 시인들이다. 윤동주의 「서시」를 떠올려보자.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직선의 호흡이지만, “한 점”에서 숨이 멈췄다 흘렀다,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것은 마치 걸음을 멈춘 나무 한 그루처럼 보인다. 노래인지 한숨인지 모를 듯, 끝내 호흡의 진동으로 남았다. 2. 대표 작품윤동주의「서시」는.. 2025. 7.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