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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서사 구조와 한국 현대 소설

by Godot82 2025.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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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서사 구조와 한국 현대 소설
전통 서사 구조와 한국 현대 소설

 

1. 전통 서사와 한국 현대 소설의 리듬

전통 서사는 오래된 나무의 휘어진 가지 같다. 수백 년을 견디며 세월과 바람, 세상의 무게를 품고 있지만 늘 마지막엔 다시 열매를 맺기 위해 솟아오른다. 한국 소설도 그 가지 위에서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고, 떨어지며, 다시 자라는 과정을 겪었다. 우리의 문학은 끊임없이 전통을 딛고, 그 위에서 현대를 새로 쓸 방법을 찾았다.

2. 전통 서사 구조의 흐름

전통 소설, 예컨대 김만중의『구운몽』이나 허균의『홍길동전』에는 서두–전개–위기–절정–결말의 다층적인 흐름이 있다. 그 구조는 시간이 직선처럼 이어지지 않고, 마치 산과 골짜기처럼 올랐다가 내려오는 굴곡으로 읽혔다. 그 서사의 힘은 전지적 시점보다는 인물의 삶의 질료에 더 집중한다. 길동의 모험, 정초의 꿈꾸기, 각 인물은 이야기 안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가’를 행위와 가슴의 울림으로 증명한다.

3. 현대 초기 

1930~40년대, 김동리의『무녀도』, 채만식의『태평천하』처럼 소설은 전통의 외형을 깨기 시작했다. 모든 사건이 국가와 사회, 계급의 압력 아래에서 왜곡되고, 흔들렸다.『무녀도 』속 인물은 단순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전통과 현대, 타인과 나의 불안이 중첩된 존재다. 전통 서사의 외형은 여전하지만 그 무결함은 금이 가 있었고 그 흔들림이야말로 한국 현대 소설이 새로운 중심을 찾는 첫 발자국이었다.

해방 이후, 박경리의『토지』는 팔도 만평 속 사람들의 삶을 한 줄의 실로 엮었다. 전통 농경 공동체의 풍속, 자연과 사람의 호흡을 담아내며 이야기는 하나의 시대적 서사시처럼 번져갔다. 그러나 그 서사는 단순히 농촌을 그리는 것이 아니었다. 일제, 해방, 분단, 전쟁, 경제 발전이라는 한국의 근현대사 고민을 온몸으로 품었다. 전통 서사가 역사를 견디고 목소리를 내는 힘을 얻은 순간이었다.

4. 1980년대 이후 

1980년대 이후, 전통 서사는 더 이상 ‘전체’ 안에 함몰되지 않았다. 황석영의『손님』처럼 개인의 기억이 트라우마가 되어 흐릿하게 번지기 시작했다.『손님』에서 서사는 더 이상 시작과 끝을 정리하지 않았다. 이것은 전통 서사 구조와의 거리 두기였다.

5. 2000년대 이후

요즘 한국 현대 소설은 서사의 결 구조뿐 아니라 서술자의 위치, 시점, 목소리에도 집중한다. 정유정의『7년의 밤』은 갈등의 다층적 시간을 엮어내는 방식으로 전통과 현대를 모두 비튼 작품이다. ‘잘못된 한밤’이란 순간이 망각, 복수, 용서를 중심으로 반복되고 뒤집힌다.

김영하의『살인자의 기억법』도 전통 서사가 아닌 기억의 파편을 이어 붙이는 조각보 방식이다. 과거가 겹치고, 불확실해지고, 끝내 완전한 중심을 잃은 채 읽히는 이야기에 가깝다. 이처럼 한국 소설은 전통 서사의 윤곽을 버리지 않으면서 그 구조를 삐끗, 밀고, 흔듦으로써 현대를 덧씌운다.

김영하, 정유정, 황정영, 공지영, 박경리… 그들의 작품 속엔 전통의 ‘이야기 흐름’과 현대의 ‘의식의 흐름’이 겹쳐 있다. 그 겹침은 더 이상 전통 구조를 지키기 위해, 현대를 위해 부러 틀어지는 것이 아니라 두 세계가 동시에 말하고 있는 중임을 보여준다.

6. 마치며

전통 서사는 시작에서 끝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이야기는 완성된다. 하지만 오늘의 한국 현대 소설은 “끝나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라는 전제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우리는 여전히 살아있는 시간이자, 이야기를 쓰는 순간 또한 살아있는 시간”이라는 주장이다. 이야기가 죽어버린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 당신과 나를 동시에 잇는 실이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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