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은유, 상징, 알레고리
말과 의미 사이에는 늘 틈이 있다. 우리가 “사랑”이라고만 말하면 너무 단순하고 낡은 느낌이다. 하지만 “쨍한 레모네이드빛으로 혀끝이 쓰라린 느낌”이라 하면, 마음이 저릿하다. 그 틈에 들어가는 게 은유(metaphor)다. 은유는 ‘A를 B처럼 말하는 것’이며, 상징(symbol)은 ‘한 사물이나 이미지가 다른 깊은 뜻을 담는 것이다.
알레고리(allegory)는 그걸 더 길게, 하나의 이야기처럼 확장시킨 것이다. 한마디로 은유는 ‘짤막한 퍼즐’, 상징은 ‘숨겨진 보물지도’,
알레고리는 ‘보물섬까지의 긴 항해’라고 할 수 있다. 조지프 캠벨과 클레어 패밀리의 따르면, 모든 이야기는 ‘숨겨진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장치이며, 이는 인간이 뿌리 깊게 공유하는 심리적 본능이라고 한다.
이런 틀은 한국 문학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말 그대로 “논바닥까지 질퍽한” 서정은, 은유로 빛을 얻기도 하고, 알레고리로 세계를 뒤흔들기도 하는 것이다.
2. 전통 속 은유와 상징의 씨앗
한국 고전문학에는 은유와 상징이 숨어서 놀고 있었다. 예컨대 허균의『홍길동전』에서 주인공 홍길동은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아들이지만, 사실은 ‘이상적인 민중 영웅’이다. 이건 단순한 모험담이 아니라 ‘공정함 없는 나라에서 능력 있는 사람이 제자리 못 찾는 현실’에 대한 은유이자 상징이다. 홍길동이 보여주는 초인적인 능력은 그가 속박된 현실을 뛰어넘고 싶어 하는 ‘민중의 꿈’을 알레고리로 말한다고도 볼 수 있다.
또,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에는 ‘진달래꽃’이라는 꽃이 ‘이별’이라는 감정을 담는 상징이 된다. “사뿐히”라는 의태어는 꽃잎처럼 다가와 내 마음을 흔들었다는 느낌을 주고, “영변에 약산”이라는 자연 배경은 이별이 멀고도 아릿한 기억이라는 의미를 덧씌운다. 이처럼 전통 문학에서는 은유와 상징은 우리 정서를 살포시 건드리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3. 근대 이후
근대 문학, 특히 20세기 들어와서는 문학의 언어 감각이 확 달라진다. 이광수의『무정』은 직접적인 문장과 리얼리즘으로 상징을 덜 쓰고, ‘현실’을 직접 보여준다. 하지만 곧이어 이청준이나 손창섭 같은 작가들은 다시 은유와 상징으로 눈을 돌린다. 이때 등장하는 개념이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다.
모더니즘은 전통적 의미 구조를 깨뜨리고 “의미 없는 징후들을 조각처럼 보여주는 것”을 시도했고, 포스트모더니즘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 진짜와 가짜, 상징과 허구를 거미줄처럼 엮어버린다. 쟈크 데리다는 “언어는 본래 불완전하고, 지연된 의미만을 생산한다”라고 했고, 그 관점에서 문학은 직접 말하지 않고 ‘말 사이’를 파고든다. 한국 문학도 이 영향을 받아 직설보다 여백, 표층보다 심층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4. 대표 작가와 작품
김동리 작가의『무녀도』는 표층적으로는 무당 굿판 이야기지만, 무녀는 현실에서 소외된 여성, 굿판은 사회적 제의(ritual), 굿의 폭죽 소리는 파괴된 전통과 새로운 세계로 흔들리고 싶은 욕망의 은유로 볼 수 있다. 보통 악귀를 내쫓는 굿은 현대인의 불안(도시화와 전통의 충돌)을 상징한다.
황순원 작가의『소나기』속 소년과 소녀의 순수한 사랑은, ‘소나기’라는 짧지만 강렬한 자연 현상에 비유된다. “갑자기 퍼붓고, 금세 잦아드는” 소나기처럼 두 사람의 만남과 이별은 순수하지만 허망하다는 상징을 부여한다.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경우 삶의 변화 속에서 싱아(많았던 것들)는 ‘사라진 기억과 사람들’을 상징하고, 그 상실은 허무하고 씁쓸한 ‘노스탤지어’로 알레고리화 된다.
현대 한국 문학에서 은유와 알레고리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비판, 자기 성찰, 내면 분열을 부드럽고 깊게 전달하는 장치다. 가령 한강의『채식주의자』는 ‘채식’이라는 은유를 통해 ‘폭력으로 가득한 현실 속에서의 자기 해방과 분열’을 표현하고, 광기의 심연을 조명합니다.
5. 마치며
한국 문학 속 은유, 상징, 알레고리는 흔들리는 세계와 흔들리는 마음들 사이에 늘 ‘사이 공간’을 만들어 왔다. 그 공간에는 직설이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있고, 이미지를 통해만 도달할 수 있는 진실이 있으며, 이야기 전체를 은유처럼 만드는 구조가 숨어 있다. 문학은 이 도구들을 통해 말하지 않아도 전하고 싶은 것들을 말하고,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들을 그려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