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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서울독립영화제 대상, 김곡 감독의 <고갈>

by Godot82 2025.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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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갈-Exhausted-김곡
고갈-Exhausted-김곡

 

1. 고갈 (Exhausted)

2009년, 한국 사회는 불안정했다. 금융위기의 여파는 중산층의 틀을 흔들었고, 비정규직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거리엔 실직자들이 늘었고, 사람들은 뉴스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 시기에 김곡은 말이 아니라 이미지로, 분석이 아니라 감각으로, 사회의 기저에서 무너져가던 사람들의 ‘내면’을 영화에 담았다. 그건 ‘사건’보다 더 조용히, 더 깊이 스며드는 방식이었다.

 

<고갈>이 발표된 2009년 당시, 한국 독립영화계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었다. 윤성호의 <은하해방전선>, 이경미의 <미쓰 홍당무> 등 젊고 개성 강한 감독들이 사회와 개인 사이의 틈을 탐험하던 시기였다. 김곡은 그중에서도 가장 밀도 높은 ‘내면’의 언어를 사용하는 감독이었다. 

 

그의 영화는 소외된 이들의 세계를 ‘비참하게’가 아니라 ‘차갑게’ 묘사함으로써, 그들에게 다른 형태의 존엄을 부여한다.

2. 줄거리

<고갈>은 줄거리로 설명되는 영화가 아니다. 등장인물은 단 세 명이다. 한 남자, 한 여자, 그리고 또 다른 남자. 이들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외진 산속 물 공급소를 관리하며 살아가는 남자에게 한 여자가 찾아온다. 그 여자는 도망치듯 그곳에 머물고, 남자는 그녀를 받아들인다. 그러다 과거의 흔적처럼 또 다른 남자가 등장한다. 세 인물 사이의 긴장은 불꽃 대신 침묵으로 번진다.

 

김곡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침묵과 결핍, 상처와 부식을 시각화한다. 특히 ‘물’은 영화 전반에서 상징으로 기능한다. 생명을 유지해 주는 것이지만, 이 물은 깨끗하지 않고, 흐르지 않으며, 때로는 폭발적으로 터진다. 마치 사람의 감정처럼. 가득 차오르다, 스스로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3. 마치며

<고갈>은 보는 사람에게 친절하지 않다. 설명도 없고, 감정적 위로도 없다. 하지만 그래서 더 진실하다. 영화가 끝나고, 정적 속에 남겨진다. 그리고 묻게 된다. 나는 지금, 어떤 감정의 물가에 서 있는가? 고갈된 것은 무엇이며, 다시 채울 수는 있는가? 그 질문은 영화보다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묵직하고, 서늘하며, 자꾸만 되새김질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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