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히로뽕은 무엇인가
히로뽕은 향정신성의약품이고, 표준국어사전에 등장한 표제어라고 한다. 뉴스나 수사기관 같은 경우에는 '필로폰'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히로뽕과 같은 의미다. 줄여서 뽕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단어는 마약성 물질 대부분을 지칭하는 은어로 사용된다. 히로뽕은 메스암페타민의 성분을 갖고 있어 매우 강하게 중추 신경을 흥분시키고 자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태평양 전쟁 시기에 병사들이 더 오래 깨어 있게 하기 위해서 일본군에게 배포되었다고 하는데, 일상을 파괴하는 심각한 중독성과 의존성 때문에 금지되었고 현재까지 마약류 관리법으로 엄격하게 규제되고 있다. 메스암페타민은 전 세계적으로 불법이다. 히로뽕은 신경계뿐 아니라 간이나 심장 등 신체 곳곳에 치명적인 위험을 가하고 결국 생명을 앗아가는 치명적인 마약인 것이다.
2. 뽕의 계보
1970년대 이후부터 히로뽕이라고 불리는 메스암페타민을 불법으로 제조하고 유통하는 경우가 급증했고, 전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1960대 재일조선인들에 의해 히로뽕 제조 기술이 유입되면서 히로뽕이 퍼지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는 재일조선인인 정강봉이 있었다. 그 외 히로뽕 제조 기술자로는 1970년에 체포된 김화순이 있는데, 김화순도 재일조선인이었다고 한다.
3. 뽕의 계보 속으로
서점을 구경하다가 신간 코너에 놓여있는 책을 보고 흥미가 생겼다. 뽕의 계보라는 제목이 시선을 끌었다. 뽕? 뽕이 뭐지? 책을 집어 들어 표지를 자세히 봤다. 정강봉부터 텔레그램까지 히로뽕 유통왕 60년 이야기라고 쓰여있는 문구가 이 책을 읽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우리나라가 더 이상 마약청정국이 아니고, 2024년을 기준으로 마약사범이 2만 명을 넘어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책 속 마약왕은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다. 미디어에서 재연되는 손을 벌벌 떠는 소위 약쟁이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나이키 트레이닝복을 입고 MLB 야구 모자를 즐겨 쓴다고 했다. 더 충격이었던 건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수월하게 히로뽕을 구매할 수 있다는 거였다. 특히, 인터넷 포털이나 온라인 채팅에 능숙한 청소년들이 마약의 치명적인 위험성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채 순간의 호기심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사용한다는 점에서 현재 마약 유통의 심각성을 느낄 수 있었다. 온라인이라는 익명성과 비대면 거래가 청소년 마약사범 증가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 책에는 다양한 마약왕들이 등장한다.
히로뽕 제조 기술자였던 정강봉과 김화순이 검거된 이후 금괴 밀수에서 히로뽕으로 품목을 바꿨던 이황순처럼 밀수꾼들은 하나 둘 히로뽕 밀수에 뛰어 들었고, 당시 최대 무역항이 있는 부산은 히로뽕의 도시로 변하기 시작했다. 가끔 마약을 다룬 영화를 보면 해안 도시를 배경으로 한 경우가 있는데 나름 근거가 있는 설정이었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마약왕들의 검거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당시 검사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4. 뽕의 계보를 덮으며
이 책은 1950년대에서 1980년대 초 태동기를 거쳐 1980년대 중후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히로뽕이라는 불리는 마약의 역사를 추적한다. 히로뽕이 어떻게 한국에 들어오게 됐고, 비즈니스로 자리 잡았는지 그 와중에 벌어졌던 굵직한 사건들을 보여준다. 특히, 작가가 교도소에 수감된 마약왕에게 꾸준히 편지를 보내 마침내 직접 대면하게 된 부분은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 당연하게도 마약왕들의 말로는 비참했다. 거듭되는 수사와 재판에 긴장을 놓지 못하고 살거나 감옥에 드나들거나 빚을 지고 생활고에 시달렸다. 한방에 쉽게 돈을 벌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이들도 결국엔 모두 붙잡혔다.
삶이 히로뽕에 저당 잡혀 질질 끌려다니는 사례들을 보면서 인간은 나약하다는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계속 현재진행형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게 너무 무서웠다. 마약 관련 범죄가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는 만큼 마약 예방 교육과 단속을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미 마약을 접한 이들을 위한 치료 및 재활 프로그램을 늘리고 보완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