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디오적 현존(video presence)
“비디오적 현존(video presence)”은 한마디로 말하면, 보이는 것, 지금 거기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매개된 것을 말한다.
우리가 화면 속 사람을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느끼는 감각이다. 하지만, 실은 비물질적인 신호들이 눈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보면 이렇다.
TV를 켜고 뉴스를 본다. 앵커가 또렷이 말한다. 그의 목소리는 나를 뚫고 들어오고, 눈은 카메라를 통해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거기 있는 것 같지만, 어디에도 없는 것 같은 이 감각, 이게 바로 비디오적 현존이라 할 수 있다.
2. 왜 “현존(presence)“이라는 말을 쓸까?
현존이라는 말은 철학적으로 중요한 단어이다. ‘내 앞에 있음’, ‘실제로 존재함’이란 뜻이다. 후설, 하이데거, 데리다 같은 철학자들은
“지금 여기에 있음”이라는 감각이 인간 인식의 핵심이라고 봤다. 그런데 비디오는 이 감각을 아주 기묘하게 흔들어버린다. 아무것도 없지만, 꼭 무언가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환영이 아니다. 비디오는 진짜를 가짜처럼, 가짜를 진짜처럼 흉내 내지만은 않는다. 그냥 존재 자체를 ‘다르게 존재’하게 만들 뿐이다. 비디오적 현존이라는 개념은 1990년대부터 미디어 철학이나 영상 예술 비평에서 많이 논의됐다. 대표적으로 필립 아우슬랜더(Philip Auslander)는 공연 예술과 비디오 기록의 관계를 분석하면서 “비디오적 현존”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는 “디지털 미디어는 공연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존재 양식을 만들어낸다.”고도 했다.
3. 현대예술에서의 활용
작가 빌 비올라(Bill Viola)는 비디오 설치를 통해 거기에 있는 듯한 부재를 만든다. 아니시 카푸어(Anish Kapoor)는 ‘보이되 만져지지 않는 공간’을 시각화한다. 그리고 이 예술 작품들은 우리가 “현존”이라고 믿어온 것의 감각을 흔든다. 비디오적 현존은 존재의 유령이고, 기억의 잔상이며, 보는 것의 착각인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4. 마치며
정리하면, 비디오적 현존은 지금 여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절대 거기 없는 존재감 같은 것이다. 그것은 디지털 시대의 유령이고,
매체가 만든 거짓된 ‘지금’, 그리고 그것에 속아 넘어가고 마는 우리 눈의 감각인 셈이다. 이 개념은 비디오 아트, 가상현실, 딥페이크, 실재와 이미지의 윤리 문제까지 확장되는 큰 개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