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현대 한국 문학의 새로운 얼굴: 김영하

by Godot82 2025. 6. 5.
반응형

한국문학-김영하
한국 문학-김영하

 

1. 현대 한국 문학의 새로운 얼굴 작가 김영하

김영하의 소설을 읽다 보면, 마치 조용한 밤길을 걷는 기분이 든다. 불빛은 희미하고, 바람은 조금 차갑고, 누군가 뒤를 따라오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무섭지는 않다. 오히려 묘하게 편하다. 그의 문장은 감정을 쏟아붓지 않는다. 절제된 문장, 건조한 시선, 그 안에서 오히려 더 많은 감정이 솟아오른다. 이것이 김영하가 보여주는 현대 한국 소설의 새로운 얼굴이다.

 

김영하(1968~)는 자신을 “이야기꾼이기보단 사건 기록자”라고 말한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언제나 ‘어딘가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기억에서, 가족에서, 현실에서. 그는 말한다. “이야기에는 시작과 끝이 있지만, 사건은 그냥 일어난다.” 이는 기존의 소설이 가진 전통 서사 구조와는 조금 다르다.

 

이야기가 ‘처음-중간-끝’을 따라 흐른다면, 김영하의 소설은 ‘중간에서 시작해 끝을 숨긴 채’ 멈추는 경우도 있다. 이런 방식은 모더니즘 이후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과 닮아 있다. 이 개념은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Jean-François Lyotard) 같은 철학자가 만들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큰 이야기(역사, 진리, 종교 같은)는 이제 믿을 수 없다.” 대신, 작은 이야기들, 개인적인 경험들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2.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김영하의 첫 장편소설「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1996)는 죽음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자살을 안내해 주는 ‘자살 안내인’이 등장한다. 이 황당하고 차가운 설정은 읽는 이에게 깊은 질문을 던진다. 삶은 누구의 것인가? 죽음을 선택할 권리도 개인에게 있는가? 작가는 이 작품에서 인간의 자유, 윤리, 그리고 사회의 통제를 탐색한다.

3. 살인자의 기억법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는「살인자의 기억법」(2013)이다. 이 소설은 과거 살인자였던 알츠하이머에 걸린 한 노인이 또 다른 살인을 막으려 하는 이야기다. 기억이 지워지고, 진실이 흔들리며, 독자는 점점 무엇이 진짜인지 모르게 된다. 마치 안갯속을 걷는 기분이다.

김영하는 이 소설을 통해 기억이 얼마나 쉽게 조작될 수 있는지, 인간이 믿고 있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한지를 보여준다. 거울을 보는데, 거울이 나를 닮지 않은 순간처럼.

4. 마치며

아주 감정적인 상황에도 그는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묵묵히 보여줄 뿐이다. 어떤 이는 이를 “냉소주의적 문체”라고 말한다. 감정을 덜어낸 문장, 거리를 둔 시선. 이러한 스타일은 미국의 작가 레이먼드 카버를 떠올리게도 한다. 카버는 “필요 없는 단어를 걷어내는 것”을 문학의 기본이라고 여겼다.


김영하 역시 쓸데없는 수식이나 장황한 감정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글은 더 세다. 무덤덤해서 오히려 더 아프다. 김영하의 소설은 현실 같지만, 조금 비틀려 있다. 거울을 살짝 기울여 보는 듯한 기분. 익숙한데 낯설고, 진짜인데 가짜 같다. 일상의 뒤틀림 속에서 진실을 보여준다. 아니, 보여주는 척하면서 숨긴다.

 

김영하는 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새로운 글을 써왔고, 소설뿐만 아니라 에세이, 여행기, 팟캐스트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왔다. 그는 말한다. “소설가는 결국,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정답 대신 물음표를 준다. 그 물음표는 독자의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울린다.

우리는 여전히 김영하를 읽는다. 아니, 읽는 게 아니라 그가 만든 길을 따라 걷는다. 모든 것이 흐릿하고,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은 시대, 그는 말한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시대에는, 당신이 무엇을 믿는지가 당신을 설명해 준다.”

그것이 김영하 소설의 힘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