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 호러 문학
갑자기 문이 삐걱, 열린다. 그런데 아무도 없다. 이게 호러다. 설명하려 하면 사라지고, 모른 척하면 따라온다. 한국 호러 문학은 그렇게 등줄기를 타고 오르며, 뒷목을 간질이는 이야기다. 시작은 늘 조용하지만 끝은 언제나… “어?” 하고 고개를 돌리게 만든다. 그렇다면 호러라는 장르는 언제부터 있었을까? 우리가 귀신 얘기를 무서워한 게 언제부터일까?
이제부터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바로 “한(恨)”의 역사이다.
2. 공포의 뿌리
한국 호러 문학의 첫 자락은 구비문학, 그러니까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들에서 시작되었다. “전설”이라는 단어가 가장 가깝다. 대표적으로는 <장화홍련전> 같은 이야기. 계모에게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자매의 귀신이 복수를 한다. 그냥 무서운 게 아니라 억울함, 슬픔, 분노가 섞인 ‘감정의 응어리’에서 공포가 온다. 마치 밤새 끓인 곰탕처럼 깊은 공포다.
한국 고전문학의 특징으로 “한의 미학”을 꼽는다. 이는 억눌린 감정이 풀리지 않은 채 축적되면서 발화되는 정서다. 그러니까 한국의 공포는 단순한 ‘깜짝 놀람’이 아니라, ‘오래 묵힌 슬픔’이란 얘기다.
3. 한국의 호러
한국 현대 호러는 사회의 단면을 비추는 거울 같았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산업화와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됐고, 사람들은 익명성과 외로움 속에 살기 시작했다. 그때 등장한 공포는 귀신보다 ‘사람’이었다.
대표적인 작가 김원일의 단편 「어둠의 혼」(1986)은, 광복 후 이데올로기 갈등으로 억눌린 사회 분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현실 속에서 괴물보다 더한 폭력에 시달린다. 여기서의 공포는 핏자국보다 말 한마디에서 느껴진다. 사각사각, 종이 찢어지는 소리보다 사람 목소리가 무섭다.
2000년대 이후, 한국 호러 문학은 본격적으로 젠더, 권력, 계급 문제를 다룬다. 한 마디로, “한(억울함)을 품은 귀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누가 억눌렸는가”로 바뀐 것이다. 정이현, 손보미, 정세랑 같은 작가들은 불쑥 튀어나오는 귀신보다, 천천히 나를 조이는 구조를 더 무서운 것으로 그려낸다.
예를 들어, 정세랑의 소설 「시선으로부터,」는 명확히 호러는 아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삶의 모든 층위에서 ‘감시’당하는 감정을 독특한 긴장감으로 풀어낸다. 언뜻 보면 애매하지만, 자꾸만 목에 턱 걸리는 감정의 연속이다. 그리고 황정은. 그녀는 “부서진 집”과 “무너진 거리” 속에서 사람을 그린다.
「백의 그림자」에서처럼, 존재의 경계가 흐려지고, 내가 진짜 살아 있는지 의심하게 만드는 이야기. 뚝뚝, 똑똑, 귓가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듯한 문장들로,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공포를 만들어낸다.
4. 마치며
심리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기이함(Das Unheimliche)“이 공포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낯익은 것이 낯설어지는 순간, 우리는 공포를 느낀다. 예를 들어, 매일 보던 인형이 어느 날 혼자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는 순간 말이다.
한국 호러 문학은 이 ‘기이함’을 사회 구조와 감정의 층위에서 포착해 낸다. 늘 지나던 골목, 엄마가 해주던 국, 버스 안 창밖, 그 익숙함이 이상하게 낯설 때. 그때 이야기가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한국 호러 문학은 ‘공포’보다 ‘울음’에 가깝다. 뚜벅, 뚜벅 걸어가다, 갑자기 웅크리게 되는 이야기 같기도 하다.
피 튀기는 자극보다, 살며시 문을 여는 섬뜩한 감정. 이야기의 깊은 골짜기에서 들려오는 “당신 누구야…” 하는 듯한 속삭임. 작가들은 그 소리에 귀 기울인다. 그리고 써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