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자들은 어떻게 말하기 시작했는가
오래전부터 이야기는 늘 남자의 목소리로 시작되었다. 전쟁에 나간 병사,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 영웅이나 비극의 주인공. 문학 속 주요 인물들은 대부분 남자였다. 여자들은 주로 그 곁에 있는 존재였다. 기다리는 사람, 희생하는 사람, 조용한 사람. 그러나 1990년대 이후, 한국 문학은 달라졌다.
이제 이야기를 시작하는 사람이 바뀌었다. 말없이 참고만 있던 인물이 말하기 시작했다. 그 선두에 신경숙과 은희경이 있었다.
2. 신경숙
신경숙(1963~)은 조용히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은 마음속 깊은 곳까지 스며든다. 마치 오래된 냄비에 물을 끓이는 것처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물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그 안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슬픔, 상처, 그리고 꾹 참고 있던 기억들.
신경숙의 대표작인「엄마를 부탁해」(2008)는 어느 날 서울역에서 엄마가 사라지면서 시작된다. 가족들은 엄마를 찾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들이 엄마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작품은 단지 가족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그 안에는 한국 사회의 여성, 특히 ‘엄마’로 살아가는 이들의 현실이 녹아 있다.
말없이 희생해 온 여성들. 이름보다 역할로 불렸던 사람들. 신경숙은 그들의 침묵을 문장으로 바꾼다.
3. 은희경
은희경(1959~)은 바깥에서 냉정하게 바라본다. 대표작인「새의 선물」(1995)은 어린 여자아이가 세상을 관찰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아이는 단순히 순진한 아이가 아니다. 냉소적이고, 똑똑하고, 때로는 잔인하다. 세상이 얼마나 불공평한지, 어른들이 얼마나 이중적인지, 그 모든 걸 꿰뚫고 있다.
은희경은 말한다. “감정에 휘둘리는 여자 말고, 스스로 판단하는 여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다”라고. 그녀의 문장은 깔끔하고, 때로는 날카롭다. 마치 날카롭게 벼려진 칼처럼.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안쪽엔 분노와 슬픔이 쌓여 있다.
4. 페미니즘과 문학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개념이 있다. 바로 페미니즘(Feminism)이다. 이 말은 '여성(Female)’과 '주의(ism)’의 합성어다. 간단히 말해,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개념은 19세기말 유럽에서 시작됐고, 대표적인 사상가는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이다.
그녀는『제2의 성』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즉, 사회가 여성을 특정한 모습으로 만든다는 뜻이다. 이후 많은 여성 작가들이 ‘여성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시작했다.
5. 마치며
이 두 작가의 공통점은 ‘소위 거창한 사건 없이도 큰 울림을 만든다’는 데 있다. 신경숙은 조용한 침묵으로, 은희경은 냉정한 시선으로 한국 사회의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는지 보여준다. 그들은 사랑받지 않아도 살아남고, 가족을 지키지 않아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 애쓴다. 그 자체로 혁명이다. 조용하지만 강한 혁명.
처음엔 ‘여성 문학’이라 불렸지만, 이제는 이미 그 경계를 넘어섰다. 신경숙과 은희경의 작품은 남성 독자에게도, 다른 세대에게도, 모두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들의 글은 여성이라는 틀을 넘어, ‘인간’의 이야기로 읽힌다. 누구나 혼자이고, 누구나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하며, 누구나 무언가를 잃고 살아간다. 이 보편적인 감정을 그들은 아주 조용하게, 그러나 똑똑히 말한다.
그동안 우리는 오랫동안 여자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게 아니라 듣지 않으려 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