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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박제한 쇼맨,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

by Godot82 2026. 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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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

1. 죽음을 박제한 쇼맨, 데미언 허스트: 포름알데히드 속에서 길어 올린 삶의 질문

가끔 미술관 한복판에서 거대한 상어와 마주칠 때가 있다. 살아있는 바다의 포식자가 아니라, 투명한 유리 탱크 안, 푸른 용액 속에 갇혀 영원히 멈춰버린 상어다. 20년 넘게 현대미술의 수행성과 자본의 맥락을 연구해 온 나에게도 **데미언 허스트(Damien Hirst)**의 작품은 여전히 서늘한 당혹감을 준다.

 

그는 예술가인가, 아니면 그저 영리한 비즈니스맨인가? 그는 생명을 존중하는가, 아니면 죽음을 전시하며 돈을 버는 냉혈한인가? 오늘은 영국 현대미술의 지형을 완전히 바꿔놓은 ‘무서운 아이’, 데미언 허스트의 세계를 탐험하며, 우리 시대가 왜 이 잔혹한 쇼맨에게 열광했는지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

2. 리즈의 불량소년, 세계 미술의 중심에 서다

데미언 허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그의 뿌리를 살펴야 한다. 그는 1965년 영국 브리스틀에서 태어나 리즈에서 자랐다. 유년 시절의 그는 미술관보다는 거리의 거친 삶에 익숙한, 소위 말하는 '불량 청소년'에 가까웠다. 하지만 예술에 대한 열정만은 남달랐고, 결국 런던의 골드스미스 대학(Goldsmiths, University of London)에 입학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YBA (Young British Artists)는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한 젊은 영국 예술가 그룹을 일컫는다. 허스트는 이 그룹의 실질적인 리더였다. 이들은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소재를 사용하며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프리즈 (Freeze, 1988)는 허스트가 대학 시절 친구들과 함께 버려진 창고에서 기획한 전시다.

 

이 전시는 YBA 탄생의 신호탄이 되었으며, 광고 거물 찰스 사치(Charles Saatchi)의 눈에 띄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허스트는 반으로 갈린 소와 송아지를 포름알데히드에 넣어 전시한 작품으로 영국 최고의 현대미술상인 터너 프라이즈 (Turner Prize, 1995)를 받으며 명실상부한 세계적 스타가 되었다.

3. 박제된 공포: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4.3미터 길이의 진짜 상어를 탱크에 넣은 작품이다. 제목부터가 철학적이다.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포름알데히드 (Formaldehyde): 무색의 자극적인 냄새가 나는 기체로, 물에 녹인 용액은 생물 표본을 보존하는 방부제로 쓰인다. 허스트는 이 화학 물질을 이용해 생명체를 '박제'하여 전시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죽음을 잊고 산다. 하지만 고속도로에서 사고 현장을 목격할 때, 혹은 공포 영화의 잔인한 장면을 볼 때 우리는 묘한 불쾌감과 호기심을 동시에 느낀다. 이를 **관음증적 호기심(Voyeuristic Curiosity)**이라 한다. 허스트는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탱크 속의 상어는 금방이라도 나를 집어삼킬 듯 위협적이지만, 동시에 결코 움직일 수 없는 '죽은 고기'일뿐이다.

 

우리는 안전한 유리벽 너머에서 죽음을 감상한다. 영화 **<죠스>**가 우리에게 줬던 공포가 '보이지 않는 위협'이었다면, 허스트의 상어는 '박제된 진실'이다. 그는 우리가 애써 외면하는 죽음이라는 물리적 사실을 미술관이라는 가장 우아한 공간에 툭 던져놓는다.

4. 메멘토 모리: 다이아몬드로 치장한 해골의 역설

허스트의 또 다른 파격은 2,156평방밀리미터의 백금 해골에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아 넣은 작품 **<신의 사랑을 위하여 (For the Love of God)>**에서 정점에 달한다. 제작비만 약 200억 원이 넘게 든 이 작품은 예술과 자본의 결합을 상징한다. 우리는 명품 가방이나 한정판 운동화에 열광한다. 그것이 영원히 나의 가치를 증명해 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허스트의 다이아몬드 해골은 말한다. "이 눈부신 보석도 결국 죽은 이의 유골 위에 얹힌 장식일 뿐이다." 대중문화 속에서 좀비 영화나 호러 퀸 캐릭터들이 죽음과 아름다움을 결합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가장 화려한 것(다이아몬드)과 가장 끔찍한 것(해골)을 합쳐놓음으로써, 허스트는 자본주의의 욕망과 생명의 유한함을 동시에 비웃는다. 이것이 바로 현대판 바니타스의 모습이다.

5. 현대인의 성소, 약국: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허스트는 거대한 약장을 빼곡히 채운 알약들을 전시하기도 한다. 제목은 <약국 (Pharmacy)>. 그는 왜 하필 약에 집착했을까? 허스트에게 약국은 현대인의 '성당'이다. 우리는 죽음과 질병에 대한 공포를 떨치기 위해 신에게 기도하는 대신 약을 먹는다. 분홍색, 파란색의 예쁜 알약들이 질서 정연하게 놓인 모습은 현대 과학에 대한 맹신을 보여준다.

 

일상의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감기에 걸리면 약을 먹고, 비타민을 챙겨 먹으며 안도감을 느낀다. 약 봉투를 뜯는 행위는 일종의 종교적 의식(Ritual)이 되었다. 허스트는 이 익숙한 풍경을 전시장으로 가져와 묻는다. "이 작은 알약들이 정말 당신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해 줄 수 있는가?" 그의 약장은 아름답지만 차갑고, 질서 정연하지만 공허하다.

6. 스펙터클의 미학: 예술가는 경영자여야 하는가

허스트는 작품을 직접 만들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수천 점의 점화(Spot Painting)는 그의 조수들이 그린다. 그는 아이디어를 내고, 시스템을 구축하며, 브랜드를 관리한다. 허스트는 마치 애플의 스티브 잡스**슈프림(Supreme)**의 설립자처럼 행동한다. 그는 예술이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2008년, 그는 갤러리를 거치지 않고 자신의 신작들을 직접 경매에 부쳐 약 2,000억 원의 낙찰가를 기록했다. 이는 미술 시장의 관행을 뒤흔든 일대 사건이었다. 대중이 블록버스터 영화의 거대한 스케일에 압도되듯, 허스트는 거대한 상어, 수만 마리의 나비 박제, 다이아몬드 해골이라는 스펙터클을 통해 관객을 마비시킨다.

 

그는 예술이 더 이상 고독한 천재의 산물이 아니라, 거대한 자본과 시스템이 맞물려 돌아가는 쇼 비즈니스임을 숨기지 않는다.

7. 썩어가는 나비와 영원한 명성 사이에서

허스트의 초기작 중 하나인 **<천 년 (A Thousand Years)>**을 떠올린다. 유리관 안에 소의 머리를 두고, 그 위에서 파리들이 알을 까고 구더기가 생기며, 다시 파리가 되어 전기 살충기에 타 죽는 과정을 보여주는 잔인한 작업이다. 허스트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불편함을 던진다. 그는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니, 차라리 그것을 똑바로 마주하고 즐겨라"라고 외치는 듯하다.

 

우리는 누구나 영생을 꿈꾸지만, 역설적으로 죽음이 있기에 삶은 빛난다. 허스트가 포름알데히드 속에 가두고 싶었던 것은 상어 한 마리가 아니라, '죽음을 잊고 사는 우리의 오만함'이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그의 방식이 지나치게 상업적이고 자극적이라는 비판을 받을지언정, 그가 던진 질문—"예술은 무엇이며, 삶과 죽음은 어떻게 정의되는가"—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늘 당신의 일상 속에서 마주친 작은 알약 하나, 혹은 길가에 떨어진 시든 꽃잎 하나에서 데미언 허스트의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그의 거대한 예술적 실험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죽음은 우리 곁에 항상 머물러 있다. 다만 허스트가 그것을 좀 더 비싸고 화려하게 포장해 보여주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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