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주디스버틀러 (Judith P. Butler)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 1956년 미국 클리블랜드에서 태어난 유대계 철학자이자 젠더 이론가. 어린 시절부터 질문이 많았다고 한다. 예컨대, 왜 어떤 사람은 '정상’이라 불리고 누군가는 ‘이상’이라 불리는지. 그 질문은 성장하면서 더 깊어졌고, 결국 철학과 윤리학, 정신분석 이론, 페미니즘, 구조주의를 넘나들며 **‘정체성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행되는 것이다’**라는 개념에 다다른다.
버틀러는 단지 학자가 아니다. 정치적 투사, 성소수자 인권 운동가, 그리고 여러 갈등 속에서도 “누군가가 배제될 때 철학은 존재 의미를 잃는다”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영향받은 사상가로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시몬 드 보부아르 등이 있다. 그녀의 대표 저서《젠더 트러블》(1990) 은 페미니즘 이론의 지형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2. 수행성, 무대보다 더 무대 같은 일상의 자리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되는 방식대로 살아왔나, 아니면 누구의 눈치를 보며 내가 된 건가. 버틀러는 말한다. 우리가 성별을 비롯한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 게 아니라, “하게 된다”라고. 마치 매일 아침 같은 방식으로 커피를 타고, 같은 표정으로 사람들을 맞이하듯. 반복되는 작은 행동들이 쌓여 “저 사람은 그런 사람이야”라고 말해질 때, 우리는 이미 그 행동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수행성’이라는 말은 어렵게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우리가 집을 나설 때 바지를 입고 셔츠를 고르고, “오늘은 좀 환하게 웃어야지”라며 버스 창문에 비친 얼굴을 확인하는 몸짓. 그것이 수행이다.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납득하기 위해 반복하는 행동들.
마치 무대에 오르는 배우처럼, 우리는 하루에 여러 번 역할을 바꾼다. 회사에서는 사회성이 있다가, 집에선 말수가 줄고, 친구 앞에서는 또 다르게 말한다. 버틀러는 이 모든 것을 진짜가 아니라 “반복된 연기”라고 본다. 연기는 거짓이 아니라, 살아지는 방식이다.
3. 영화 속에서 사람들은 성별을 연기한다
영화〈보이후드〉를 떠올려보자. 어떤 특정한 장면이 아니라, 그 아이가 성장하며 몸과 말투가 달라지는 과정 전체. 그는 “남자아이답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기대 속에서, 행동을 조정하며 남성이 되어간다. “너 그러면 안 돼, 남자가 왜 울어?” 같은 말들이 하나씩 박히면서 말이다.
혹은 아이돌 무대를 보자. 여자 아이돌에게는 ‘예쁨’과 ‘섬세함’이, 남자 아이돌에게는 ‘강함’과 ‘절제된 카리스마’가 요구된다. 카메라 앞에서 그들은 의상만 갈아입는 게 아니다. 몸의 각도, 시선, 걸음, 심지어 숨조차 달라진다. 이게 바로 수행성이다.
4. 성별은 태어나는 게 아니다, 만들어지는 것이다
버틀러가 강조한 것은 이거다. “성별은 본질이 아니라 반복되는 행위다.” 한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분홍색이나 파란색 수건으로 감싸지는 것처럼. 색 하나가 미래의 몸짓까지 설정한다. 그리고 그 규칙은 아무도 명확히 정한 적 없지만, 모두가 알고 따라온다. 이것을 버틀러는 헤게모니적 규범이라고 말한다.
쉽게 말하면, “사회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 예를 들어 ‘결혼식에서 신부는 흰 드레스를 입는다’는 말처럼. 흰색이 순수함을 의미한다는 것도, 누가 정한 건 아니다. 오랜 반복 속에서 모두가 그렇게 믿게 된 것. 수행성은 이렇게 삶 내부에서 자라난다.
5. “나는 그냥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의 위험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내가 원래 그래.” 하지만 버틀러는 묻는다. “정말 네가 원래 그런가? 아니면 그렇게 행동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건가?” 어렸을 때 누군가 “너는 조용해서 좋다”고 말하면, 그 말은 칭찬처럼 보이지만 조용함을 유지해야 하는 역할을 부여한다. 그 후로 아이는 시끄럽고 싶은 순간에도 조용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사회적 인정은 편안함을 주는 동시에, 감옥이 되기도 한다.
6. 규범은 지속되어야 존재한다
버틀러가 말하는 수행성의 핵심 중 하나는 이거다. “힘은 반복되어야 유지된다.” 어떤 규칙이든 매일 반복되며 힘을 갖는다. 반대로, 반복이 끊기면 힘은 희미해진다. 예를 들어, TV 광고에서 여성들이 독립적이고 기술적인 역할로 등장하기 시작하면, 기존의 ‘여성은 부드럽고 집 안에 머문다’는 이미지가 이동한다. 반복 속에서 규범은 흩어진다.
그래서 버틀러는 저항의 자리도 수행에서 찾는다. “다르게 행동함으로써, 다르게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7. 마치며
수행성은 무대만의 일이 아니며, 나도 그 안에 있다. 나만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감정이, 사실은 사회가 남겨둔 각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각본은 수정될 수 있다. 버틀러가 말한 수행성의 진짜 힘은 여기 있다. “그렇게 살아왔어도, 다른 방식으로 다시 살아볼 수 있다.”
버틀러에게 수행성이란, 사람들의 삶을 구속하는 개념이 아니라 삶을 다시 작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이것은 연기를 멈추자는 말이 아니다. “연기를 바꿀 수 있다”는 말이다. 어떤 날은 이렇게 말해도 좋겠다. “나는 오늘, 다른 방식으로 나를 수행해 보려 한다.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냥 반복을 멈추지 않겠다.”
규범은 수많은 사람들이 반복해온 행동이다. 그리고 예술은 그 반복 사이에 틈을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