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거울 속의 생명, 좌우의 리듬으로 피어나다: 문신(Moon Shin)의 대칭 미학
평창동의 가파른 언덕을 올라 가나아트센터의 너른 마당에 들어서면, 마치 거대한 곤충의 날개 같기도 하고 우주에서 온 미지의 생명체 같기도 한 청동 조각들을 마주하게 된다. 20년 넘게 한국 근현대 미술의 궤적을 추적해 온 작가 **문신(Moon Shin)**은 언제나 '가장 고독한 수행자'로 기억된다. 그는 나무를 깎고 돌을 다듬으며, 혼란스러운 세상의 질서를 '대칭'이라는 완벽한 논리로 재편하려 했던 인물이다.
이제 곧 가나아트센터에서 우리를 맞이할 문신의 전시는 단순히 과거의 작품을 회상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것은 디지털 복제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손의 노동'과 '생명의 리듬'을 되찾는 의식이다. 화가로 시작해 세계적인 조각가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그가 묵묵히 걸어온 길을 수필의 온기를 담아 따라가 보려 한다.
2. 마산의 바다에서 파리의 하늘까지: 불멸의 조각가 문신
문신 작가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기구하면서도 찬란했던 생애의 지도를 펼쳐야 한다. 본명은 문신술 (文信術). 1923년 일본 규슈에서 태어났고, 1995년 경남 마산 사망했다. 대표작으로는 <태양의 아들>, <화(和)>, <올림픽-1988> 등이 있고, 1991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 슈발리에 수훈, 마산 문신미술관 직접 건립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태어나 도쿄에서 회화를 공부했지만, 해방 후 귀국하여 마산에 정착했다. 하지만 1961년, 불혹의 나이에 그는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예술의 본고장 파리로 떠난다. 그곳에서 그는 붓을 내려놓고 정과 망치를 들었다. 가난과 고독 속에서 그가 깎아낸 조각들은 유럽인들을 매료시켰고, 그는 '세계적인 조각가'라는 타이틀을 얻어 1980년 고국으로 돌아왔다.
3. 완벽한 균형의 미학: 대칭(Symmetry)의 철학
문신의 조각을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대칭(Symmetry)**이다. 그의 작품을 중앙에서 반으로 접으면 양쪽이 정확히 일치할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우리는 일상에서 대칭을 흔하게 만난다.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 나비의 양쪽 날개, 혹은 정갈하게 지어진 한옥의 구조가 그렇다. 대칭은 자연이 설계한 가장 기본적인 생존의 법칙이기도 하다.
대중예술 속에서 대칭의 미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은 영화감독 **웨스 앤더슨(Wes Anderson)**이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화면 구성을 떠올려보라. 화면의 정중앙을 기준으로 가구와 인물이 완벽하게 배치된 그 '편안한 강박'이 문신의 조각에도 흐르고 있다.
4. 딱딱한 물질에서 피어난 호흡: 생명주의(Biomorphism)
문신의 조각은 기하학적으로 완벽하지만, 차갑지 않다. 마치 살아있는 세포가 분열하거나 식물의 싹이 돋아나는 듯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이를 미술 용어로 **생명주의적 형태(Biomorphic Form)**라고 한다. 생명주의 (Biomorphism)란 자연의 생명체(세포, 아메바, 식물의 덩굴 등)에서 영감을 얻은 유기적인 곡선과 형태를 추구하는 경향이다. 기하학적인 직선보다는 부드러운 곡선과 팽창하는 듯한 볼륨감이 특징이다.
일상의 예로, 우리는 최신형 자동차의 매끄러운 곡선이나 스마트폰의 둥근 모서리에서 '생동감'을 느낀다. 이는 인공적인 물체에 생명체의 부드러움을 덧입힌 디자인이다. 대중문화 속에서는 영화 **<에이리언>**의 디자인으로 유명한 H.R. 기거의 작업(비록 기괴하지만)이나,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유려한 건축 곡선들이 생명주의적 흐름을 공유한다.
문신은 흑단이나 청동처럼 딱딱하고 무거운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그 표면을 아기 살결처럼 매끄럽게 연마하여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그의 조각을 보고 있으면 차가운 금속이 아니라, 금방이라도 꿈틀대며 하늘로 솟아오를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5. 추상의 언어로 쓴 일기: 추상(Abstraction)과 정제
그는 왜 구체적인 사람이나 동물을 그리지 않고 기묘한 형태의 **추상(Abstraction)**에 매달렸을까? 우리는 매일 추상의 세계를 경험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이모티콘'이 대표적이다. 눈동자의 눈물 한 방울이 슬픔이라는 거대한 감정을 추상화하여 전달하듯, 문신의 조각은 세상의 모든 복잡한 사연들을 가장 순수한 '선'과 '양감'으로 응축한 결과물이다.
마블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의 로고나 나이키의 '스우시(Swoosh)' 로고를 생각해 보라. 복잡한 설명 없이도 강력한 힘과 속도감을 전하는 그 단순함의 힘, 그것이 바로 추상의 위력이다. 문신은 자신의 고향 바다에서 본 파도의 굽이침, 어린 시절 보았던 곤충의 마디들을 하나하나 분해하여 가장 완벽한 형태의 '정수(Essence)'만을 남겼다.
6. 예술가의 노동, 그 숭고한 반복: 수행성(Performativity)
문신 작가는 자신을 '예술가'라기보다 '노동자'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파리 시절, 남들이 기계로 깎을 법한 단단한 나무를 밤낮없이 손으로 깎아냈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이고 지문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멈추지 않았던 그 반복적인 행위를 **수행성(Performativity)**이라 부를 수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장인이 만든 수제화나 명품 가방의 스티치 한 땀 한 땀에서 감동을 느낀다. 대중 가수들이 무대 위에서 완벽한 칼군무를 선보이기 위해 수만 번 연습하는 그 과정 또한 수행성의 일종이다. 문신의 조각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바로 그 '지독한 노동'이 빚어낸 시간의 결정체다.
가나아트센터 전시장에서 그의 작품을 마주한다면, 눈에 보이는 매끄러운 표면 뒤에 숨겨진 작가의 가쁜 호흡과 망치질 소리를 상상해 보길 권한다. 그것은 한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바친 가장 거룩한 제사와도 같다.
7. 다시, 마산의 바다를 품은 조각들
그는 말년에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고향 마산에 문신미술관을 지었다. 미술관 기둥 하나, 계단 하나까지 직접 설계하고 다듬었다. 그에게 예술은 미술관이라는 상자 안에 갇힌 전시물이 아니라, 자신이 딛고 선 땅과 하늘을 잇는 거대한 대칭의 일부였다.
가나아트센터에서 예정된 이번 전시는, 도심의 소음 속에서 길을 잃은 우리에게 '균형'이 무엇인지 묻는다. 좌우가 똑같은 그의 조각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슬픔이 있으면 기쁨이 있고, 어둠이 있으면 반드시 빛이 있음을. 그 완벽한 대칭의 리듬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삶의 불균형을 치유받는다.
나무처럼 정직하게, 돌처럼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갔던 문신의 조각들. 그 단단한 껍질 속에는 부드러운 생명의 태동이 숨 쉬고 있다. 올봄, 가나아트센터의 고요한 전시장에서 문신이 깎아낸 '생명의 대칭'과 깊은 대화를 나눠보길 바란다. 거기에는 당신이 잊고 지냈던, 가장 순수한 당신만의 '리듬'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