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문학, 말을 넘는 글의 세계
먼지 낀 책장이 사르륵, 소리 내며 열린다. 검고 고요한 먹빛이 바람처럼 스며드는 순간, 우리는 과거의 문장을 오늘처럼 읽는다. 한문학은 ‘한자로 쓰인 문학’이다. 말은 한국어인데, 글은 중국의 문자를 썼다. 이 모순처럼 들리는 조합 속에 한국 사람들의 고집스러운 감정과 생각이 오롯이 담겨 있다.
붓을 들고, 마음을 다듬어 문장을 짓던 이들의 세계는 마치 고요한 연못에 돌 하나를 툭, 던지는 느낌이었다. 파문이 넓게, 천천히 퍼진다. 이런 문학 형식은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치며 꽃을 피웠다. 산문으로는 기, 서, 표, 전 같은 형식이 있고, 운문으로는 시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율시(律詩)라는 형식은 여덟 줄로 이루어진 정갈한 시였고, 고시(古詩)는 좀 더 자유로운 형식의 시였다. 문장의 길이나 구조에 따라 규칙이 있었지만, 그 안에서 표현된 감정은 누구보다 인간적이었다. 겉은 차가운 철갑 같은 한문이지만, 속은 따뜻한 불씨 같은 마음이라고나 할까.
2. 한문학의 뿌리
한문학은 그냥 시를 짓는 일이 아니었다. 글을 쓰는 것이 곧 사람을 만드는 일이었다.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한문학은 수양의 도구였고, 정치의 언어였으며 자기 성찰의 거울이었다. 이런 생각의 뿌리는 공자와 주자에게 있다. 공자는 “문장을 통해 도(道)를 드러내야 한다”라고 했고, 주자는 이를 계승하며 글쓰기의 목적을 ‘자기 수양과 사회적 책임’에 두었다.
그랬기에 글은 비워야 했다. 감정은 눌러야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절제 속에서 오히려 감정은 더 크게 부풀었다. 마치 김이 서서히 새어 나오는 찜통처럼.
3. 한문학의 대표 작가
조선의 대표적인 한문학 작가로는 김시습과 박지원을 빼놓을 수 없다. 김시습, 호는 매월당. 그는 조선 초기,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판하며 세상을 등지고 방랑했다. 그가 쓴「금오신화」는 한문으로 된 한국 최초의 소설집이다. 기이한 이야기 속에 현실에 대한 통찰과 저항의 정서가 담겼다.
박지원, 호는 연암.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문장가였다. 그의 글은 짧지만, 속이 알찼다. 말하자면, 삶의 골목을 곡선으로 그리는 듯한 문장. 그는「열하일기」에서 청나라를 다녀온 기록을 생생히 풀었다. 비판하고, 풍자하고, 웃으면서 말한다. 그러나 문장은 쓱쓱, 베이는 느낌으로 날이 서 있었다.
4. 한문학의 현대의 가치
오늘날 한문학은 어렵고 낡은 것으로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그 속엔 현재까지도 유효한 가치가 있다. 그것은 바로 깊은 성찰이다. 한문학은 말보다 침묵을 사랑했다. 묵직하게 생각하고, 짧게 썼다.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또 하나는 간결한 아름다움이다. 짧은 문장에서 오래 남는 여운. 바람이 문틈으로 스며들 듯, 그들은 한 줄에 삶을 눌러 담았다.
한문학은 단지 중국의 글을 빌린 것이 아닌 우리의 문화적 자산이기도 하다. 그 안에는 한국적인 정서와 경험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차용이라기보다는 재창조에 가까웠다. 형식이라는 옷을 입었지만, 그 옷을 입은 몸은 우리의 몸이었다.
5. 마무리하며
한문학은 조용한 문학이다. 소리보다 그림자에 가까운 문학. 그러나 그 조용함 속엔 풍경이 있다. 사람이 있다. 우리가 있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도, 가끔은 먹물이 번지는 속도로 글을 읽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