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화 <송환> Repatriation
그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세월이 목소리를 앗아간 것도 있었고, 이야기라는 것이 그들의 삶에서 너무 오래 금지된 것이기도 했다. 카메라 앞에 앉은 노인의 눈동자는, 어딘가 아주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멀고도, 아주 가까운 북쪽. <송환>은 그 눈동자를 따라가는 영화다.
2. 김동원 감독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은 김동원 감독이다. 그는 다큐멘터리 영화계에서 오랜 시간 묵묵히, 깊이 있는 작업을 해온 사람이다. <상계동 올림픽>, <다섯 개의 시선> 같은 작품을 통해 이 땅의 노동자, 빈민, 소수자들의 삶을 기록해 왔다. 그는 늘 말보다 가까이 있었고, 카메라는 그저 곁에 머물렀다.
김동원 감독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나는 그저 카메라를 들고 있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 카메라는, 세상에서 가장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3. 한 사람의 얼굴이 역사가 된다
1992년부터 2004년까지, 12년 동안 카메라를 멈추지 않고 기록한 이 다큐멘터리는 하나의 거대한 감옥 안에 갇힌 ‘북한 출신 비전향 장기수’들의 삶을 담았다. 비전향 장기수란 한국으로 내려온 뒤에도 자신이 북한 출신이라는 정체성과 신념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은 ‘간첩’이라는 이름으로 체포되었고, 최장 30년 이상 복역한 뒤에도 출소 후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 출소 후에도 감시와 제한이 따랐고, 그들은 또 다른 감옥 안에서 늙어갔다. 김동원 감독은 서울 구로동의 천주교 피정의 집에서 이들과 함께 살며 그들의 일상을 기록했다.
카메라는 이들을 따라 아침을 걷고, 밥을 먹고, 묵상하는 시간을 함께 보낸다. 하지만 단지 일상만을 찍은 것은 아니다. 이 영화의 중심에는 “송환”이라는 오래된 단어가 있다. 즉,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그들의 소원이다. 영화 속 노인들은 수십 년을 감옥에서 살았다. 그 시간 동안 많은 것이 부서졌다. 몸도, 이빨도, 가족도. 심지어 “적이 누구였는지”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졌다.
한 인물은 말한다. “내가 한국에 내려왔던 건, 우리 가족이 잘 살게 하려고 그랬던 거야.” 그 말 뒤에 이어지는 정적은 말보다 길었다.
자신이 내려온 것이 ‘명령’이었는지, ‘선택’이었는지조차 모호해지는 그 회색의 시간 속에서, 그는 지금껏 살아왔다. 결국 그들이 바라는 건 단 하나다. “돌아가는 것” 고향으로, 가족에게, 혹은 죽은 친구가 묻힌 땅으로.
그들은 대한민국이라는 감옥 안에서, 조국을 향해 손을 뻗는다. 하지만 그 손은 자꾸만 공중에서 허우적거린다. 국가와 이념, 체제라는 거대한 벽이 그 손을 자른다. <송환>은 “정치적인 영화”가 아니다. 그보다는 “기억을 복원하려는 영화”에 가깝다. 이념은 사라졌고, 전쟁은 지나갔다. 하지만 사람은 남았다.
4. 영화가 던지는 질문
<송환>은 단순히 과거를 묻는 영화가 아니다. 우리가 여전히 외면하고 있는 한 인간의 권리, 존엄, 이름을 되묻는 영화다. 한 사람의 “돌아가고 싶다”는 말이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문을 두드릴 수 있는지를 마지막 장면에서, 한 인물이 북쪽을 바라보며 “기다려라, 나 간다”라고 말한다.
그 순간, 카메라가 멈추었지만, 이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송환>은 여전히 재생 중이다. 이 땅 어딘가에서, 여전히 돌아가지 못한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