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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한 문장을 박차고 나온 그녀들: 페미니즘과 문학

by Godot82 2025.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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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서사-페미니즘
여성서사-페미니즘

 

1. 페미니즘과 문학

한국의 페미니즘 문학은 사실 아주 오래된, 아주 느린, 아주 끈질긴 이야기다. 오래전, 사람들이 “여성”이라는 단어를 땅속 깊이 묻어두었을 때에도 그녀는 자라고 있었다. 흙 속에서. 달팽이처럼 느리게. 혹은 뿌리처럼 조용히.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소설가이자 시집을 출판했던 김명순은「동경」이나「옛날의 노래여」 같은 작품을 남겼다. 그녀는 5개 국어에 능통하고 음악적 재능까지 갖춘 여러모로 다재다능한 작가였지만, 지독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희생되고 말았다. 김명순은 한국 최초의 여성 문인이자 페미니스트 작가로 평가된다. 


그 후 많은 여성 작가들이 등장했다. 박완서는「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통해 가족사 속 여성의 상처와 억압을 섬세하게 그려냈고, 오정희는「유년의 뜰」 전쟁으로 인한 삶의 균열에 귀를 기울였다.

2. 여성 그리고 작가

1980년대에는 조금 더 드라마틱한 전환이 있었다. 여성은 더 이상 울기만 하지 않았다. 욕도 하고 문을 쾅 닫기도 했다. 홍윤숙, 노천명, 최정희로 이어지는 ‘감성적 서정’은 김혜순, 고정희의 실험적 언어로 격렬하게 뒤집혔다. 김혜순의 시는 마녀가 쓴 것 같기도 했다. 단어들이 으르렁거리고 몸뚱이들이 꿈틀대는 느낌이었다.

 

이쯤에서 잠깐, ‘페미니즘’이란 말을 다시 보자. 이 말의 사전적 정의는 “성평등을 위한 사회 운동이자 이론”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만들었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한 문장으로 그녀는 문학과 철학을 동시에 휘저었다. 한국에선 이 정의가 19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번역되고 적용됐다. 


그리고 2000년대, 여성들은 참는 대신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황정은의「디디의 우산」이나「백의 그림자」 김금희의 「경애의 마음」, 강화길의 「다른 사람」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작품들에선 사회적 억압과 트라우마가 안개처럼 스멀스멀 피어난다. 

3. 한국의 페미니즘 문학?

첫째, 억눌린 것들의 목소리. 둘째, 말로 하기 어려운 감각의 언어화. 셋째, 비가시적 폭력의 서사화. 넷째, 몸이라는 매체의 회복. 마지막으로, 말하지 않는 것의 무게. 이걸 미국의 문학 이론가 일레인 쇼월터는 ‘여성 글쓰기(Gynocriticism)’라고 정리했다. 남성 중심의 문학사 안에서 여성 문학을 재해석하려는 시도다.

물론, 이 모든 걸 거부하는 페미니즘 작가도 있다. 그게 문학이다. 틀에 갇히지 않는다. 윤이형은 SF, 젠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결합해, 문학이라는 경계선을 무너뜨렸다.「러브 레플리카」 같은 소설은 ‘사랑’과 ‘기계’ 사이에 선 독자를 끌어안았다. 여성은 더 이상 “어머니”도 아니고, “희생”도 아니다.

 

그냥 사람이다. 때론 웃기고, 때론 더럽고, 때론 무섭다.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자유롭고 그래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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