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이론은 차갑고, 삶은 뜨겁다: 자기 이론(Auto-theory)의 탄생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는 바로 **자기이론(Auto-theory)**이다. 이것은 단순히 일기를 쓰는 것도, 딱딱한 논문을 쓰는 것도 아니다. 나의 살과 피가 섞인 삶의 경험 속에 철학적 사유를 정박시키는 일, 즉 '나'라는 텍스트를 통해 세상을 읽어내는 새로운 예술적·학술적 수행이다.
우리는 흔히 '이론'이라고 하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그래서 나와는 거리가 먼 어떤 거대한 체계를 떠올린다. 하지만 **자기 이론(Auto-theory)**은 이 거리감을 단숨에 좁혀버린다. 자기 이론은 자기(Auto)와 이론(Theory)의 합성어이다. 개인적인 자서전적 경험과 추상적인 비평 이론, 철학, 사회학적 담론을 결합하여 새로운 형태의 지식을 생산하는 장르이자 방법론을 의미한다.
바르트가 어머니의 죽음을 겪으며 사진의 본질을 탐구한 <밝은 방>은 전형적인 자기 이론적 접근이다. 그는 '사진이란 무엇인가'라는 거창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백과사전을 뒤지는 대신, 서랍 속 어머니의 어린 시절 사진을 꺼내 들었다. 자신의 슬픔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필터를 통해 '인덱스(Index)'라는 사진 이론을 재정립한 것이다.
2. 해나 개즈비의 <나네트>: 고통을 해체하는 이론적 수행
대중예술 속에서 자기 이론의 정수를 보여주는 사례를 꼽으라면 단연 넷플릭스의 스탠드업 코미디 **<해나 개즈비: 나네트(Nanette)>**를 들 수 있다. 이 공연은 단순한 코미디가 아니다. 해나 개즈비는 자신의 트라우마와 성소수자로서의 고통을 무대 위로 끌어올리되, 이를 미술사와 사회학적 이론으로 해체한다.
그녀는 피카소의 입체주의를 설명하며, 그가 여성을 대상화했던 방식을 비판한다. 자신의 신체적 고통과 사회적 억압의 경험을 예술 이론과 연결 지어 설명할 때, 관객은 웃음을 넘어 서늘한 지적 각성을 경험한다. 이것이 바로 **수행성(Performativity)**의 힘이다. 해나 개즈비는 코미디라는 형식을 빌려 자신을 전시하는 동시에, 코미디라는 장르 자체의 한계를 이론적으로 공격한다. 그녀의 몸은 그 자체로 이론이 되고, 그녀의 목소리는 사회적 구조를 타격하는 해머가 된다. 자기 이론은 이처럼 '말하는 주체'가 사라진 기존의 학문 체계에 '살아있는 주체'를 복원시키는 작업이다.
3. 보 번햄의 <인사이드>: 격리된 방에서 발견한 사회학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전 세계를 열광시킨 보 번햄의 <인사이드(Inside)> 역시 탁월한 디지털 시대의 자기 이론이다. 폐쇄된 방 안에서 홀로 영상을 찍고 편집하는 그의 모습은 현대인의 고독을 상징한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인터넷 환경이 우리의 인지 구조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자본주의가 어떻게 우리의 우울까지 상품화하는지를 노래와 퍼포먼스로 분석한다.
그는 카메라 앞에 앉아 자신의 공황장애를 고백하면서도, 동시에 '백인 남성 예술가로서의 위치성'을 끊임없이 성찰한다. 이것은 사회학에서 말하는 **성찰성(Reflexivity)**의 극치다. 보 번햄은 자신의 내면을 파고들지만, 그 끝에서 만나는 것은 자기 연민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모순이다.
그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항상(Anything and everything, all of the time)" 제공하는 인터넷 세상의 구조적 폭력을 자신의 무너져가는 정신 상태와 연결한다. 그의 방은 하나의 실험실이자, 거대한 사회학적 텍스트가 된다.
4. 몸이라는 실험실: 폴 B. 프레시아도와 신체정치학
조금 더 급진적인 예술가이자 학자인 폴 B. 프레시아도(Paul B. Preciado)의 행보는 자기이론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전위적인 지점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몸에 테스토스테론 젤을 바르며 변화하는 신체적 반응을 기록한 <테스토 정키(Testo Junkie)>라는 책을 썼다.
그는 자신의 성전환 과정을 단순히 개인적인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다. 대신 이를 통해 현대 사회가 어떻게 호르몬과 약물을 통해 인간의 성별과 욕망을 통제하는지, 즉 **생체정치학(Biopolitics)**을 분석한다. 생체정치학(Biopolitics)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제시한 개념으로, 국가나 권력이 법적인 통제를 넘어 인간의 생물학적 생명(출생, 사망, 건강, 신체 등)을 관리하고 지배하는 통치 기술을 의미한다.
프레시아도에게 자신의 몸은 곧 이론을 검증하는 실험실이다. "내 몸이 곧 내 논문이다"라고 선언하는 그의 태도는, 지식이란 머릿속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근육과 혈관, 호르몬의 작용 속에서 체화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이것을 우리는 **체현(Embodiment)**이라고 부른다.
체현(Embodiment)은 추상적인 생각이나 이론, 정신적인 상태가 구체적인 신체적 형태나 감각,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지식이 머리로만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익혀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5. 매기 넬슨의 <아르고노트>: 사랑과 정체성의 콜라주
자기 이론의 대중화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작가는 매기 넬슨(Maggie Nelson) 일 것이다. 그녀의 저서 **<아르고노트(The Argonauts)>**는 임신과 출산, 그리고 젠더 퀴어 파트너와의 사랑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연대기를 그리면서, 그 페이지마다 비트겐슈타인, 들뢰즈, 버틀러 같은 철학자들의 문장을 병치한다.
그녀는 그리스 신화 속 '아르고 호'의 전설을 인용한다. 배의 부품을 하나씩 다 바꾸어도 그 배가 여전히 '아르고 호'이듯, 우리의 정체성도 끊임없이 변하는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논리다. 그녀의 글쓰기 방식 자체가 **브리콜라주(Bricolage)**적이다. 브리콜라주(Bricolage)는 주변에 있는 다양한 재료나 도구들을 본래의 용도와 상관없이 가져다 써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작업 방식이다. 문화 이론에서는 기존의 문화적 기호를 재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행위를 뜻한다.
넬슨은 이론을 권위적인 잣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라는 불안정한 바다를 항해하기 위한 구명정으로 사용한다.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난해하게만 느껴졌던 퀴어 이론이나 페미니즘 담론들이 비로소 나의 일상적인 관계와 감정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6. 당신의 삶도 하나의 이론이 될 수 있다
나는 대중이 자기 이론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자기 구원'에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고통이나 방황을 '나만의 문제' 혹은 '정상적이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며 괴로워한다. 하지만 나의 경험을 사회적 담론이나 철학적 이론과 연결하는 순간, 나의 문제는 거대한 인류사적 맥락의 일부가 된다.
예를 들어, 직장 내 괴롭힘으로 힘들어하는 누군가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단순히 "운이 나쁘다"거나 "내가 부족하다"라고 생각하는 대신, 푸코의 권력 이론을 읽으며 조직 내에서 권력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분석해 본다면 어떨까? 혹은 웹툰 **<송곳>**의 대사처럼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구조적 필연성을 이해하게 된다면? 그 순간 고통은 객관화되고, 우리는 그 상황을 견디거나 타개할 '지적인 무기'를 갖게 된다.
자기 이론을 실천하는 사람은 한 장르에 머물지 않는다. 미술을 보며 사회학을 떠올리고,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신체성을 탐구한다. 텍스트와 이미지, 몸과 웹을 오가며 자신만의 담론을 만들어낸다.
7. 펜을 들고, 당신의 이론을 써라
당신의 삶은 그 자체로 충분히 연구할 가치가 있는 텍스트라는 사실이다. 당신이 SNS에 올리는 사진 한 장, 오늘 일기장에 적어 내려간 우울한 문장 한 줄, 영화를 보며 흘린 눈물 한 방울 속에 이미 수많은 이론의 씨앗이 담겨 있다. 자기 이론은 우리에게 '전문가들의 언어'를 빼앗아 '나의 언어'로 재창조할 권리를 부여한다.
어렵고 딱딱한 용어들에 주눅 들지 마라. 대신 그 용어들을 당신의 일상으로 초대해라. 당신의 연애, 당신의 노동, 당신의 육아, 당신의 취미 생활 속에 철학의 숨결을 불어넣어라. 비가 그친 뒤의 축축한 거리에서 플라뇌르(Flâneur)가 되어 걷듯, 우리 모두 각자의 삶이라는 대지 위에서 자신만의 '자기 이론'을 써 내려가는 예술가가 되기를 소망한다.
당신이 오늘 마주한 세상은 어떤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혹은, 기존의 어떤 이론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당신만의 고유한 진실은 무엇인가? 그 질문이 시작되는 지점이 바로 당신의 첫 번째 자기 이론이 태어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