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즉자주의란?
“즉자주의”라는 말은 좀 낯설게 들릴 수 있지만, 사실 그 속엔 꽤 뾰족하고 중요한 미학적 태도가 들어 있다. 간단히 말해,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태도, 그게 바로 "즉자주의(卽自主義)"다. 다른 말로 하면 “해석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고, 그냥 보자”라는 뜻이다.
좀 더 풀어보면 “즉자(卽自)“는 ‘곧 자기 자신’이라는 뜻이다. 무언가를 볼 때, 그것을 무엇의 상징이나 은유로 보지 않고, 그 자체로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즉자주의다. 예를 들어, 햇빛이 창문을 통과해 방바닥에 떨어진다고 하자. 즉자주의자는 그 빛을 “희망의 상징”이라거나 “죽은 엄마가 남긴 어떤 환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냥 빛일 뿐이다. 그 자체로 충분한 어떤 것이다.
2. 예술에서 즉자주의
예술에서 즉자주의는 "재현(무엇을 닮게 그리는 것)"을 거부하거나, 감정적 해석을 밀어내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이나 미니멀리즘 작가들, 혹은 존 케이지의 무작위 음악 같은 데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림이 어떤 것을 “의미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이게 있어.” 그걸 말하는 것이다.
3. 문학에서의 즉자주의
문학에서도 즉자주의적 태도는 등장했다. 예를 들어, 레이먼드 카버나 얼리 리처드 포드 같은 작가들, 혹은 일본의 요시모토 바나나의 초기 단편들처럼, 등장인물의 감정을 과잉 설명하지 않고 상황 그 자체를 조용히 보여준다. 해석은 독자의 몫이다.
조금 깊이 들어가자면, “즉자(卽自, in-itself)“라는 말은 "헤겔(Hegel)"이나 사르트르(Sartre) 같은 철학자들의 언어이기도 하다. 사르트르는 “즉자적 존재(être-en-soi)”와 “대자적 존재(être-pour-soi)”를 구분했다. 즉자적 존재는 의식 없이 그냥 존재하는 것이다. 돌멩이, 의자, 책상처럼 말이다.
대자적 존재는 의식을 가진 존재, 즉 자신이 있다는 걸 아는 존재, 인간이다.
예술에서 즉자주의란 그 돌멩이처럼,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바라보는 것, 그걸 말하는 것이다.
4. 마치며
요약하면 즉자주의란 대상이 가진 그 자체의 상태를 해석 없이 받아들이는 태도다. 예술에서는 상징, 은유, 감정을 줄이고 있는 그대로의 질감, 형상, 리듬, 물성을 드러내려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현대미술이나 미니멀리즘, 혹은 감정 절제의 미학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