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판소리와 구비문학
어릴 적, 어느 날 저녁이었다. TV는 꺼졌고, 벽지는 구겨졌고, 바람은 찬데 라면은 끓고 있었다. 할머니는 무릎 위에 손을 얹고, 입을 열었다. “옛날에 말이여…” 그때 나는 알았다. 문학은 종이에만 적히는 게 아니라는 걸.
우리는 종종 잊는다. 문학이란 활자 이전에 소리였고, 몸짓이었고, 숨결이었다는 걸. 학자 김열규 선생은 이런 구비 문학, 즉 말로 전해지는 문학을 연구하며 한국인의 이야기 본능을 “살아 있는 것들의 기록”이라 했다. ‘구비’(口碑)는 말 그대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이다. 입구(口) 자에 비석 비(碑), 말하자면 말로 새겨지는 무형의 비석이다.
도깨비가 뛰어다니고, 호랑이가 말을 하고, 신랑을 삼킨 구렁이가 몸을 뒤집는다. 이건 그냥 웃긴 이야기가 아니다. 그건 생존이고, 교훈이고, 밤을 견디게 해주는 것들이다.
2. 판소리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을 그냥 입으로만 풀기엔 아쉬운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북을 잡았다. 그리고 북을 두들기며, 중간중간 노래를 했다. 그게 판소리다. 조선 후기의 민중 예술인 판소리는 ‘판’(場)에서 벌어지는 ‘소리’(노래와 이야기)의 복합체다. 누가 만들었느냐고? 한 명이 아니다.
하지만 신재효라는 이름은 꼭 기억해 두자. 19세기말, 이 사람은 판소리 다섯 바탕을 정리하고, 이야기 구조와 인물, 정서까지 정리한 최초의 판소리 이론가였다. 어찌 보면, 그는 음악감독이자 극작가였고, 동시에 출판 편집자였다.
판소리의 이야기 구조는 놀랍도록 견고하다. 기-승-전-결이라는 4단계 구성이 있다. 이걸 처음 정식으로 말한 건 최현식이라는 연구자였다. ‘기’에서는 인물 소개, ‘승’에서는 갈등, ‘전’에서는 위기와 반전, 그리고 ‘결’에서 마무리.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판소리는 노래(창), 말(아니리), 몸짓(발림)이 어우러진다.
춘향이 이몽룡을 향한 마음을 지키기 위해 “이 몸이 죽고 죽어”라며 노래할 땐, 말의 울림이 심장까지 번진다. 말하자면 판소리는 뇌가 아니라, 가슴으로 이해하는 문학이다.
3. 구비문학의 ‘서사 DNA’
판소리와 구비문학은 둘 다 서사, 즉 이야기 중심이다. 그 차이점은, 한쪽은 무대가 있고 노래가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한쪽은 무릎과 난롯불이 있다는 점이다. 구비문학의 가장 큰 특징은 반복과 상징이다. 호랑이가 세 번 돌아오고, 구렁이가 세 번 눈물을 흘리고, 세 자매가 서로 다른 길을 간다.
숫자 ‘3’의 반복. 리듬감. 패턴. 이건 이야기꾼이 기억하기 쉽게 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고, 듣는 사람의 귀를 붙드는 기술이기도 하다. 그리고 상징. ‘호랑이’는 무서운 존재지만, 동시에 우직한 힘을 상징한다. ‘산’은 금기의 장소이자, 새로운 운명의 공간이다. 문학연구자 김흥규는 구비문학의 구조를 ‘이항대립’이라고 했다.
즉, 선과 악, 남자와 여자, 인간과 동물처럼 두 가지 힘이 팽팽히 맞서며 이야기가 흘러간다는 것이다.
4. 구술에서 활자로, 다시 무대로
요즘은 유튜브에도 할머니 이야기 영상이 올라오고, 어린이극장에서 판소리가 다시 울린다. 한 마디로, 입의 문학은 죽지 않았다. 글자가 없던 시절에도 우리는 이야기를 만들었고, 지금도 그 이야기들이 변주되어 흐른다. “옛날에 말이여…”로 시작하던 말은, 이젠 “자 봐봐~”로 시작한다.
서사는 종이 위에서만 자라는 것이 아니다. 그건 입김 속에서도 춤추고, 목청 속에서도 울리며, 발뒤꿈치 속에서도 튀어 오른다. 판소리와 구비문학은 우리가 여전히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는 증거다. 판소리의 대표 작품들 중에는『춘향가』,『심청가』, 『흥부가』,『수궁가』,『적벽가』등이 있고, 구비 문학의 대표 작품들 중에는『선녀와 나무꾼』, 『금도끼 은도끼』, 『해와 달이 된 오누이』, 『바리데기』등이 있다.
이 중 『바리데기』는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현대적으로도 재해석이 많이 되는 이야기다. 여자가 죽은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저승까지 가는 여정. 이것은 판소리와 구비문학이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바리데기는 노래가 되고, 연극이 되고, 시가 된다. 이렇듯 문학은 계속 흘러간다. 끝나지 않는 이야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