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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다시 너를 불러본다: 영화 <오월애>

by Godot82 2025. 5.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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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애-No Name Stars-김태일
오월애-No Name Stars-김태일

 

1. 오월애 (No Name Stars)

차가운 도시, 광주. 1980년 5월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늘 머뭇거린다. 죽음은 너무 많았고, 기록은 너무 없었고, 진실은 아직 다 말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태일 감독의 오월애는 말하자면, 그 진실이 묻힌 자리에 귀를 대는 영화다. 이 다큐멘터리는 ‘이름조차 지워진 자’들, 곧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게 사살된 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시신들, 그들을 기억하려는 몇몇 사람들의 기록이다. 전라도 말씨가 굴러다니는 화면, 빛바랜 흑백 사진들, 부드러운 눈빛을 하고 있는 노인의 주름.


영화는 쉼 없이 호흡하지만, 말이 많지 않다. 오히려 자주 침묵한다. 슬픔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2. 김태일 감독

김태일 감독은 낮은 목소리, 송환 등을 통해 이미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그늘을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파고든 다큐멘터리스트였다. 그는 파헤치거나 고발하지 않는다. 대신 ‘앉아 듣는다’. 오월애에서도 그는 기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유족들이 말한다. “그날 죽은 아이가 내 아들인지 아직도 몰라요.” 그 말 뒤에는 ‘그 애의 얼굴을 아직도 못 봤어요’라는 말이, 말없이 따라온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많은 이름들이 나오지 않는다. 사람은 있지만, 신원이 없다. 눈은 있지만, 입은 없다. 그 공백이 낯설지 않다는 것이 이 나라의 비극이다.

3. 줄거리

영화의 중반부, 가족을 잃은 노인의 손등이 클로즈업된다. 가늘고 잔주름이 많고, 오래된 나무껍질처럼 거칠다. 그 손이, 30년 전 자신의 아들을 마지막으로 만졌던 그 손이, 아직도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듯 무릎 위에 올려져 있다. 그 장면은 말보다 길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그날 죽은 사람들, 그들의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사람이 아직 남아 있을까?”


그러나 이 질문은 문장 뒤에 물음표를 달지 않는다. 감독은 어쩌면 이 영화를 통해 ‘불러줄 사람’이 되려 했던 것 같다. 그의 카메라는 추적자가 아니라, 위로하는 자다.

4. 마치며

오월애라는 제목은 ‘오월에 사랑하다’라는 뜻이기도 하고, ‘오월을 애도하다’라는 소리이기도 하다. 사랑과 죽음, 둘은 때때로 아주 가까운 자리에 있다. 5월의 광주는 두 감정이 나란히 앉아 있는 도시였다. 영화는 거기서 다시, ‘사랑’을 말한다. 그것은 그들이 죽음을 견딘 방식이었고, 오늘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기억은 언제나 제 무게를 가지고 있다. 잊히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게 고통이든, 사랑이든, 죽음이든. 오월애는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어떤 문장도 없다. 어떤 답도 없다. 하지만 그 모든 침묵 속에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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