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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노래와 새 언어: 한국 문학을 다시 쓴 이상과 백석 이야기"

by Godot82 2025.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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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백석
이상과 백석

 

1. 이상과 백석 이야기

조용히 숨 쉬던 공기가 딱, 하고 갈라지는 순간이 있다. 한국 문학도 그런 순간을 겪었다. 오래된 이야기와 새로움을 향한 갈망이 맞부딪치면서, 문학은 부서지고 다시 만들어졌다. 전통과 실험은 원래 서로 싸우는 사이다. 하지만 한국 문학에서는 이상하게도, 이 둘이 싸우면서도 손을 잡았다. 서로를 밀어내면서도 끌어안았다.

 

이걸 ‘변증법적 발전’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하면 다른 생각들이 부딪치면서 결국 더 나은 쪽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독일 철학자 헤겔이 이런 식의 사고를 처음 정리했다. 오늘은 그 특별한 조화를 보여준 두 사람을 소개하려 한다. 이상과 백석. 이 둘은 너무 달랐지만, 한국 문학에 아주 깊은 균열을 함께 냈다.

2. 시대를 앞서간 이상

이상(1910-1937)은 시대를 앞서 간 사람이었다. 본명은 김해경. 그의 글은 매끄럽거나 아름답지 않았다. 오히려 깨진 유리 조각 같았다. 손에 쥐면 베이고, 피가 나고, 아픈 줄도 모르게 계속 만지게 되는 그런 글. 대표작 〈오감도〉를 보면 알 수 있다. “13인의 아이들이 길을 건넌다…”

 

마치 숫자 세듯 건조하게 적은 글 속에, 이상은 당시 사회의 불안과 고립감을 숨겨놓았다. 뚝뚝 끊기는 문장 리듬은 읽는 이의 마음을 또각또각 두드린다. 이상은 문학을 ‘예쁘게’ 만들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의 부서진 모습을, 그대로 문장에 담으려 했다. 이걸 문학에서는 ‘모더니즘’이라고 부른다. 19세기 유럽에서 시작된 새로운 예술 흐름으로, 특히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가 대표적이다.

3. 전통으로 시를 빚던 백석

백석(1912-1996)은 이상과는 정반대였다. 본명은 백기연. 그의 시는 뭔가 구수하고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옛것만을 노래한 건 아니다. 백석은 전통 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변화를 만들었다. 대표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보면,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여기서 ‘푹푹’이라는 말은 단순히 눈이 많이 온다는 뜻만이 아니다. 가난과 외로움이 마음 깊숙이, 포근하고도 서럽게 쌓여가는 느낌이다. 백석은 서울말 대신 평북 사투리와 토속어를 썼다. 당시 시인들이 세련된 단어로 시를 꾸미던 때, 그는 땅 냄새나는 말로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그렸다. 이런 방식을 ‘리얼리즘’이라 부른다.

 

19세기 프랑스의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 같은 이들이 현실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것처럼, 백석도 한국적 현실을 생생히 담아냈다.

4. 이상과 백석이 남긴 것

이상은 도회적이고 차가운 글을 썼고, 백석은 농촌적이고 따뜻한 시를 썼다. 그러나 둘 다 한 가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다르게 써야 한다.’ ‘새롭게 말해야 한다.’ 그들의 글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세상을 흔들었다.

 

이상은 스물일곱이라는 너무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백석은 시대의 흐름에 휘말려 북쪽으로 갔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언어는 여전히 살아 있다. 오늘날 문학 안에서도 전통과 실험은 계속 싸운다. “지켜야 한다.” “바꿔야 한다.” 서로 부딪치면서, 한국 문학은 더 깊고 넓게 자란다.

전통과 실험은 싸우면서 살아간다. 밀려왔다 빠져나가는 파도처럼. 때론 세차게, 때론 조용히.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문학의 땅을 적셔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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