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이의 눈높이로 본 세상: 방정환 이야기
바람은 늘 어른들을 향해 불었다. 키 작은 사람들은 먼지를 뒤집어쓰며 눈을 찡그렸다. 아무도 그들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다. 방정환(1899-1931)은 그 작은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너희는 존중받아야 해.”
2. 어린이라는 말을 만든 사람
우리가 지금 자연스럽게 쓰는 ‘어린이’라는 단어, 그걸 처음 만든 사람이 바로 방정환이다. 그전까지, 아이들을 부를 때 ‘애들’, ‘애새끼’, ‘꼬마’ 같은 말을 썼다. 존중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말이었다. 방정환은 생각했다. “아이들도 하나의 온전한 사람이다.” 그래서 ‘어리다’는 말에 존귀함을 담아 ‘어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런 생각은 ’ 아동 중심주의’라는 이론과도 통한다. 아동 중심주의는 아이를 미성숙한 존재로만 보지 않고, 스스로 세상을 느끼고 생각하는 주체로 본다. 이 개념은 20세기 초 미국의 교육학자 존 듀이가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존 듀이는 말했다. “교육은 어린이 안에 있는 능력을 끌어내는 것이다.”
방정환은, 책상 위가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하며 이 진리를 몸으로 배웠다.
3. 어린이날
1923년 5월 1일, 서울에서 <어린이날>이 처음 열렸다. 방정환과 그의 동료들이 만든 이 날은, 작은 사람들을 위한 커다란 잔치였다. 그들은 풍선을 나눠주고, 달콤한 사탕을 나눠주고,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말들을 나눠줬다.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입니다.” 방정환은 이 말속에 작은 불씨 같은 희망을 숨겨 넣었다.
그는 <색동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어린이를 위한 신문, 동화책, 잡지들을 펑펑 쏟아냈다. 신문 이름도 곱다.〈어린이〉. 거기엔 화려한 미사여구도, 지루한 설교도 없었다. 대신, 작은 발소리 같은 이야기들이 실렸다. 아이들의 마음에 쏙 들어가는 노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짧은 동화가 가득했다.
4. 방정환의 작품들
방정환이 남긴 대표적인 글 중 하나는〈사랑을 주자〉라는 짧은 수필이다. 그는 말했다. “어린이에게는 사랑을 주자. 꾸짖지 말고, 때리지 말고, 사랑을 주자.” 이 말은 단순했지만, 쇠망치처럼 묵직하게 가슴을 울렸다. 또, 그는 편지 쓰기를 좋아했다. 어린이에게 쓴 짧은 편지들 속에는 잔잔한 강물 같은 온기가 흘렀다.
“너는 소중해. 네가 웃으면 세상이 조금 더 좋아져.”
그런 말들이 이따금 편지 봉투 속에서 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5. 어린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방정환은 33살이라는 짧은 생을 살았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어린이들을 세상의 한복판으로 끌어올렸다. 오늘날, 어린이가 권리를 가진 존재로 인정받는 것도 그의 노력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여전히 어린이의 목소리가 가려진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거리에서도 작은 목소리들은 쉽게 눌려버린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방정환이 무릎을 꿇고 아이를 바라보던 모습을 떠올려야 한다. 어린이는 단지 커다란 어른이 되는 중간 단계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완전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다. 방정환은 여전히 우리에게 속삭인다.
“어린이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