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후 문학
한국 전쟁(1950~1953)은 총칼만 오고 간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마음도, 생각도 둘로 쪼개졌다. 그걸 “이데올로기”라고 부른다. 이데올로기란 쉽게 말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다. 자본주의냐, 공산주의냐. 남이냐, 북이냐. 사람이 사람을 찢어놓던 그 틈에서 작가들은 펜을 들었다. 그들이 만든 문학을 “전후 문학”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전쟁 이후의 문학이다.
2. 최인훈의 <광장>
『광장』(1960)은 최인훈의 데뷔작이자 한국 현대문학의 전환점이다. 주인공 ‘이명준’은 남과 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인물이다. 그는 남쪽의 자유에도, 북쪽의 평등에도 숨이 막힌다. 그래서 둘 다 아닌 제3국을 택하지만, 결국 바다에 몸을 던진다. 이 책의 제목인 ‘광장’은 사회적 소통의 공간이다.
그러나 그 광장은 닫혀 있다. 사람들이 서로의 생각을 말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공간. 최인훈은 소설을 통해 이명준을 통해 말하는 것 같다. “이념은 차갑다.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소외시키는 도구가 된다.” 이런 시각은 실존주의 철학에서 영향을 받았다. 실존주의는 ‘인간은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가 대표적이다.
이명준은 어떤 체제도 믿지 못하고, 오직 자신만이 선택의 주체가 된다. 그러나 그 선택조차 실패로 끝난다. 그 실패는 슬프고, 또 서늘하다.
3. 조정래의 <태백산맥>
반면『태백산맥』(1987~1995)은 전쟁의 ‘집단적 기억’을 묻는다. 작가 조정래는 10권이 넘는 이 장편을 통해 1948년 여순사건에서 한국전쟁까지를 꼼꼼히 그린다. 전남 벌교라는 작은 마을을 무대로, 좌익과 우익, 양민과 군인, 친척과 이웃이 서로에게 총을 겨눈다.
조정래는 이데올로기를 단순히 ‘정치’로 보지 않았다. 그건 사람들의 삶이고, 밥줄이며, 가족의 안위였다.『태백산맥』은 리얼리즘 문학의 전통을 계승한다. 리얼리즘이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는 문학이다. 19세기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Émile Zola)나 러시아의 도스토옙스키(Fyodor Dostoevsky) 등이 영향을 준 이론이다.
조정래는 증언자이자 기록자였다. 그는 인간의 악함뿐 아니라, 선함도 보여준다. 총을 들고도 울 수 있는 사람, 배고프면서도 나눌 수 있는 사람, 이 소설엔 그런 이들이 있다. 그들은 이데올로기보다 더 크고 깊은 인간의 본성을 보여준다.
4. 마치며
두 작품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쟁을 말한다.『광장』은 개인의 내면을,『태백산맥』은 집단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한 사람의 고독과, 한 마을의 슬픔. 이 소설들은 서로 다른 창으로, 같은 상처를 본다.
둘 다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죽였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남았는가?”『광장』의 마지막은 바다 위다. 이명준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자유’를 향해 물속으로 사라진다. 『태백산맥』의 마지막은 아직 피가 마르지 않은 산맥이다. 진실은 묻혔고, 기억은 왜곡되었으며, 사람들은 아직 서로를 못 믿는다.
그 소설들은 지금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수십 년 전의 총성과 함께, 지금 현재 우리가 사는 이 사회의 소리 없는 싸움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