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 현대시의 기법과 형식 실험에 대하여
종이에 잉크가 ‘또르르’ 굴러가던 시대가 있었다. 시를 쓰는 일은 물 위에 뜨는 나뭇잎처럼,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형식은 정해져 있었고, 감정은 그 안에서 찰랑거렸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시가 틀을 부수기 시작했다. 한 줄이 짧아지고, 단어가 튀어나오고, 문법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시가 마치 슬리퍼를 질질 끌고 골목을 도는 아이처럼 제멋대로 걷기 시작한 것이다.
2. 형식을 부수다
한국 현대시의 가장 큰 특징은 형식 실험이다. 이 실험은 단순히 ‘시를 다르게 써보자’는 취향이 아니다. 삶이 달라졌고, 언어가 달라졌기 때문에 시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예전엔 4 음보, 7 음보 같은 리듬에 맞춰 시를 썼다. 이건 음악처럼 일정한 박자를 가진 시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산업화, 전쟁, 도시화 같은 사건들이 삶을 흔들어 놓자 시도 그에 맞춰 흔들리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시인이 김수영이다. 그의 시는 일정한 리듬을 따르지 않는다. 예를 들어「풀」이라는 시를 보면, 풀잎 하나가 바람에 흔들리는 듯, 문장들이 제멋대로 ‘펄럭펄럭’ 흩어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속엔 삶이 있다. 부서진 리듬 속에서 살아 있는 사람의 숨소리가 들린다.
3. 기법이 변하다
시는 말로 만든 집이다. 그 집은 때때로 반듯하고, 때로는 기울어진다. 현대시는 이 집을 부수고 다시 짓는다. 심지어 어떤 시인은 벽 없이 천장만 남기기도 했다.
백석은 전통적인 문장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끌어왔다. 그는 시에서 사투리, 토속어, 옛말을 과감하게 사용했다. 예컨대「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말보다 ‘느낌’이 먼저 다가온다. '출출이, 마가리, 고조곤히, 응앙응앙' 등과 같은 의성어와 반복어가 리듬을 만들고, 읽는 이는 마치 오래된 꿈속을 걷는 듯하다.
한편 이상은 아예 언어의 규칙을 버린 시를 썼다.「거울」 같은 시는 단어들이 갈라지고 깨지고 마치 수면 위에서 부서진 빛처럼 번쩍인다. 이상은 ‘시를 위한 시’를 시도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의 작업은 미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의 이미지즘 이론과도 닮아 있다. 이미지즘이란 ‘정확하고 선명한 이미지 하나가 수많은 설명보다 더 강하다’는 시 이론이다. 즉, 말이 아니라 그림처럼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4. 시각화와 소리 실험
현대시는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 되기도 한다. 시각시(視覺詩)라는 장르는 단어를 배열해서 하나의 그림처럼 만드는 방식이다. 어떤 시인은 단어로 나무를 그리고, 어떤 시인은 줄 바꿈으로 계단을 만든다. 그림책 같지만, 그 안엔 시인의 고백이 숨어 있다. 말하자면, “이건 글이 아니라 풍경이야” 하고 말하는 듯한 시들이다.
음성시(音聲詩)도 있다. 이건 낭독되는 순간에 살아나는 시다. 박정대나 하재연 같은 시인들은 시의 리듬과 소리에 민감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 ‘쿵’, ‘탁’, ‘솨르르’ 같은 단어들이 소리처럼 울린다. 눈이 아니라 귀로도 읽을 수 있다.
5. 언어의 변주
현대시는 심지어 말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단어의 의미보다 위치, 관계, 느낌이 중요해졌다. 문장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유예하는 방식’을 선택한 시인들도 있다. 김혜순은 여성의 몸과 감정을 낯설고 격렬한 언어로 풀어냈다. 그의 시는 이리저리 튀고, 찢기고, 물컹거린다.
어떤 독자는 무섭다고 느끼고, 어떤 독자는 해방감을 느낀다. 그게 바로 현대시의 힘이다. 다 말하지 않아도, 독자가 알아서 느끼게 되는 것이다.
6. 마치며
“시는 그냥 하고 싶은 말 쓰는 거 아닌가요?” 이 질문은 자주 나온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어떻게 쓰느냐다. 형식은 그저 그릇이 아니다.
형식은 생각의 방식이고, 삶을 바라보는 틀이다. 시인이 줄을 갑자기 바꾸는 이유는 세상이 그렇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시인이 단어를 비틀고, 버벅거리고, 찢는 이유는 그게 지금 사람들의 내면을 닮았기 때문이다. 시는 완성된 진술이 아니라 멈칫거리는 숨이다. 그리고 현대시는 그 숨을 더 솔직하게 드러낸다. 무언가를 말하려다 마는 문장, 말 대신 공백을 택한 문장, 기울어진 단어 하나가 우리 마음의 기울기를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시대에 시가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는 그 불완전함 때문이다. 시는 늘 길을 잃고, 그래서 살아 있다. 오늘도 누군가는 줄을 바꾸고,
다시 한 줄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