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스마트폰 속 문학: 웹소설과 웹툰의 반란

by Godot82 2025. 6. 9.
반응형

웹소설-웹툰
웹소설-웹툰

1. 웹이라는 새로운 땅

전철을 타면 하나같이 고개를 숙인 사람들이 보인다. 종이책이 아니라, 손바닥 안의 세상에 빠져 있다.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울고, 또 누군가는 엄지를 빠르게 튕기며 다음 장면을 향해 간다. 그 속에 있는 건 글자나 그림이다. 그러나 그것은 더 이상 종이로 된 책이 아니다. 한국 문학은 이제 웹이라는 새로운 땅 위에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이야기의 물길을 바꾼 기술은 ‘디지털 전환’ 혹은 ‘미디어 전환(media convergence)’이라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이 개념은 미국의 미디어학자 헨리 젠킨스(Henry Jenkins)가 처음 본격적으로 정리한 것으로, 서로 다른 콘텐츠들이 디지털 환경에서 융합되고, 독자와 사용자들의 참여가 높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쉽게 말해, 이야기라는 물길이 더 넓고 빠른 길을 찾아 스크린으로 흘러들어 간 것이다.

예전엔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고, 편집자의 손을 거쳐야 책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웹소설 플랫폼에서는 글을 쓰는 즉시 독자와 만나고, 순식간에 피드백을 받는다. 좋아요, 조회수, 댓글. 모든 게 글의 운명을 좌우한다. 쓰는 이도, 읽는 이도 스스로의 리듬을 가진다. 이것은 문학의 민주화이자, 동시에 시장화다.

2. 웹소설

누구나 쓸 수 있고, 누구나 읽는다

웹소설은 그야말로 ‘속도’의 문학이다. 3초 안에 눈길을 끌지 못하면, 다음으로 스크롤된다. 그래서 웹소설의 문장은 길지 않다. 마치 총알처럼 날아온다. 퉁퉁, 쾅쾅, 드르륵. 의성어와 의태어가 과장되게 사용되고, 사건은 빠르게 전개된다. 독자의 손가락이 멈추지 않도록 해야 한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청순불패’, ‘산경’, ‘글박스’ 같은 필명을 쓰는 이들이 있다. 대표작으로는『전지적 독자 시점』(싱숑),『달빛조각사』(남희성),『나 혼자만 레벨업』(추공) 등이 있다. 이들은 전통적인 문학적 형식보다는 장르와 상상력, 몰입감에 집중한다. 이 세계는 SF, 판타지, 로맨스, 무협이 자유롭게 섞이는 곳이다.

문학평론가 르네 지라르(René Girard)는 인간이 욕망을 ‘모방’한다고 했다. 웹소설은 바로 그 모방의 욕망을 자극한다. 주인공은 대부분 특별한 능력이나 비밀을 가지고 있으며, 독자는 그 인물에 자신을 투사하고, 함께 성장한다. 현실에서 부족한 감정의 보상을, 이 가상의 세계가 대신한다.

3. 웹툰

말풍선 속의 서사를 담은 웹툰은 웹소설보다 더 강한 시각적 몰입을 준다. 말풍선, 컷 분할, 배경의 움직임까지. 종이 만화책과는 구조가 다르다. 아래로 스크롤하는 형식 덕분에 시간의 흐름이나 감정의 파고를 더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강풀 작가의 『순정만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일상의 감정을 부드럽게 건드리며 웹툰 시대의 문을 열었다. 이후 윤태호의 『미생』은 직장인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만화가 아니라 ‘문학’으로도 평가받았다. 그리고『유미의 세포들』(이동건), 『재혼 황후』(알파타르트, 숨 쉬는 사과) 등 수많은 작품들이 글로벌 플랫폼으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서 소비되고 있다.

웹툰은 ‘시선의 연출’이 중요한 장르다. 한 컷의 여백, 한 줄의 흐느낌, 말풍선 없는 정적이 주는 감정의 밀도는 오히려 소설보다 깊다. 이는 영화나 드라마의 문법과도 통한다. 그래서 많은 웹툰이 영상화되고, 영상이 다시 웹툰으로 만들어지는 순환구조가 생겼다. 이야기는 이제 장르의 울타리를 넘어,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4. 마치며

이제 문학은 더 이상 ‘종이 위에 인쇄된 활자’만을 뜻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말풍선 속에서 사랑을 읽고, 누군가는 레벨업하는 주인공에게서 위안을 얻는다. 그들도 ‘이야기’를 통해 살아간다. 문학이란 결국 인간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상상하고, 말로 혹은 이미지로 다시 살아보는 작업이니까.

미국의 문학이론가 월터 옹(Walter Ong)은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 그리고 ‘전자문화’로의 이행을 설명하며, 각 시대마다 서사의 방식이 다르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는 바로 그 전환의 한복판에 서 있다. 어떤 이는 여전히 오래된 책장을 넘기고, 또 어떤 이는 스마트폰을 스크롤하며 이야기를 찾는다. 둘 모두, 문학이다.

지금도 누군가는 노트북 자판 위에서, 혹은 태블릿 펜을 잡고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밤을 새워 올린 한 편의 웹소설, 찰칵찰칵 소리를 내며 완성된 웹툰의 한 컷. 이 모든 것이 오늘의 한국 문학을 이루고 있다. 문학은 결코 죽지 않는다. 그저 그 모양을 바꿀 뿐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종종 조용히, 그러나 결정적으로 다가온다. 마치 핸드폰 진동처럼, 살며시 심장을 울린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