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학과 민주화의 나날들
처음부터 거창한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그냥, 1980년대에 누군가 쓴 시를 떠올릴 뿐이다. ‘이불속에서 몰래 읽던 시집, 그 시가 경찰보다 무서웠다’고 말하던 누군가의 얼굴도.
한국 문학에서 민주화 운동은, 총구보다 먼저 튀어나온 문장들의 행진이었다. 그 문장들 안엔 구호 대신 숨죽인 사람들의 입김이 있었고, 상처받은 채 조용히 걸어가는 발소리들이 숨어 있었다.
2. 민주화 문학의 시작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민들이 죽었다. 학생들이 먼저였고, 뒤이어 어른들이 따라나섰다. 그해 여름은 더없이 뜨거웠고, 참혹했다.
그 열기 속에서 누군가는 돌을 던지며 맞서 싸웠고, 또 누군가는 펜을 쥐었다. 당시의 검열은 살얼음 같았다. 시인은 시를 쓴 뒤 불태우기도 했고, 작가는 원고를 봉투에 넣어 이웃에게 맡겨두기도 했다.
그런 글들이 세월이 지나 도서관 서가나 작은 책방 뒤편에서 다시 발견되곤 했다. 잊히지 않으려는 문장들, 그게 민주화 문학의 시작이었다. 민주화 문학의 가장 뚜렷한 특성은 ‘사회적 발언’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정치 구호가 아니었다. 오히려 한 개인이 자신의 감정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 권리에 가까웠다.
황석영의 『객지』나 『무기의 그늘』 같은 소설은 이념보다 사람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그는 선과 악을 단순히 나누지 않고, ‘억압의 구조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을 그대로 보여줬다. 그 속의 인물들은 늘 피곤해 보인다. 신념도, 욕망도 다 축축하게 젖은 사람들. 그 피로감이야말로 1980년대를 살던 사람들의 진짜 체온이었다. 문학은 그 체온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3. 시인의 분노
시에서 민주화 운동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늘 김남주를 말해야 한다. 그는 감옥 안에서도 시를 썼다. 시가 아니라 ‘총알’을 쓴다고 말했고, 자신이 쓴 시로 인해 독자가 움찔하길 바랐다.「진혼가」나 「학살」 같은 작품은 단지 분노의 언어가 아니라, 목격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침묵의 무게였다. 그의 시는 슬픔보다 ‘결의’에 가까웠다.
당대 많은 문학작품엔 ‘이름 없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학생, 노동자, 실직자, 가정부 등 그들은 특별하지 않다. 그런데도 작가는 그들을 주인공으로 만든다.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에서 우리는 막차에 몸을 싣고 비틀거리는 노동자의 모습을 본다. 그 비틀거림은 피곤함 때문이 아니라, 존엄을 지키며 일하는 사람들의 흔들림이다.
그 문장들에는 기계 소리, 숨을 참는 호흡, 땀 냄새가 있다. 리얼리즘이라는 단어로는 다 못 설명할 감각. 그건 말보다 몸이 먼저 기억한 기록이다. 그 시대 문학의 또 다른 특징은 ‘은유’였다. 직설은 지워졌다. 검열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들은 문장 사이에 의미를 숨겨두었다.
‘꽃’은 죽은 사람을, ‘물’은 흘러넘친 피를, ‘길’은 어디로도 향하지 않는 저항을 의미하기도 했다. 한 줄을 이해하기 위해 서너 번을 다시 읽어야 했고, 읽은 사람은 한동안 말을 잃었다. 그게 민주화 문학이었다. 폭력적인 언어가 아니라, 폭력을 다 담지 못한 문장이었다.
4. 마치며
지금, 우리는 그런 시대를 지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문장들을 다시 읽으면, 그때의 숨결이 느껴진다. 한 줄 한 줄에, 누군가의 정신이 실려 있다. 그들은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았다. 대신 ‘말할 수 없음’을 끝까지 견디는 방식으로 말했다. 그래서 그들의 문장은, 지금도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