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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는 죽지 않는다: 현대 문학 속 다시 살아난 이야기들

by Godot82 2025.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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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문학 속 신화-전래동화-신화-설화
현대 문학 속 신화-전래동화-신화-설화

 

1. 오래된 이야기

누가 이야기의 유통기한을 정했을까? 산신령, 호랑이, 처녀귀신이 나오는 이야기를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런 설화들이 한국 현대문학 속에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허공에 ‘털썩’ 내려앉은 먼지처럼, 아주 조용하게. 설화란, 구전되어 내려오는 이야기들이다.

 

보통 ‘전래동화’ ‘민간신화’ ‘옛날이야기’로 불렸고, 구체적인 작가는 없지만, 이야기의 뼈대는 상상력과 삶의 지혜로 다져졌다. ‘흥부전’에서 ‘심청전’까지, 이 이야기들은 한 마디로 말하면, “살아남기 위해 꾸며낸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말들”이다. 1980년대 이후, 문학이 단순한 리얼리즘을 넘어서기 시작하면서, 작가들은 전통 설화 속 인물들과 플롯을 다시 호출한다.

대표적으로 박상륭 작가의『칠조어론』 같은 작품은 설화와 신화의 문법을 빌려 인간 존재와 세계를 해체하고 다시 쌓는다. 그들의 문장은 마치 굿판처럼 진지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울렁울렁거린다. 박상륭의 경우, 불교적 세계관과 설화적 상징을 교차시켜 읽다 보면 숨이 막히기도 하고, 뭔가가 환영처럼 사라지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2. 설화

러시아의 문예학자 블라디미르 프로프는 설화의 기본 구조를 31개의 기능으로 분류했다. 이를 통해 어떤 이야기든, 영웅이 여행을 떠나고, 위기를 겪고, 도움을 받아 돌아온다는 ‘서사 원형’을 보여줬다. 또 한국에선 조동일 교수가 설화의 기능과 상징을 민중문학의 뿌리로 바라봤다. 그는 설화가 단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억눌린 이들이 말할 수 없던 진실을 에둘러 표현한 방식이라고 했다.

3. 설화를 ‘재해석’하는 법

현대 작가들은 설화를 그냥 인용하지 않는다. 다시 써서, 꼬고, 뒤집고, 해체한다. 이를 ‘전복적 서사’라고 부르는데, 말하자면 ‘심청이 바다에 빠진 후 용궁이 아니라 도시 빈민가에 간다’는 식이다. 이건 상상력의 문제가 아니다. 현실을 다시 보게 만드는 장치다. 가령 고전 귀신 이야기의 리듬을 빌리되, 그 속 공포는 사회 구조와 개인의 심리에 가 닿는다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이건 더 이상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외면한 이야기’로 바뀐 셈이다.

4. 왜 다시 설화인가?

지금 우리는 빛보다 빠르게 정보를 소비한다. 몇 초짜리 영상, 한 줄짜리 뉴스, 짧은 밈들. 그 속에서, 설화는 느리게 말하는 법을 되새겨준다. 말하자면, “야, 잠깐 멈춰봐. 이 얘긴 좀 들어봐야 해.” 하는 식이다. 설화는 보통 결핍에서 시작해 회복으로 끝난다. 눈먼 아버지, 죽은 어머니, 도둑맞은 권리… 그리고 끝에는 눈 뜬 자, 살아난 자, 살아남은 자, 복수한 자가 남는다.

이승우의『지상의 노래』는 설화적 반복과 정서적 모티프를 응축해 종교적이면서도 서정적인 감정을 끌어낸다. 마치 오래된 그림책을 천천히 넘기는 듯 문장마다 쉭쉭 내쉬는 듯한 촉촉한 숨결이 깃들어 있다.

설화는 죽지 않았다. 그냥 잠시 묻혀 있다가, 다시 꺼내지는 중이다. 작가들은 그걸 꺼내서, 바람을 쐬고, 새 옷을 입히고, 지금 우리를 비추는 거울로 만든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오늘 우리에게도 통한다는 건 문학의 고유한 ‘마법’이다. 모든 이야기는 한 번쯤 들은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가 다시 듣고 싶은 건 그 이야기 안에, 우리가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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