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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얼음판 위에서의 농담: 부조리한 세상에 날리는 쓴웃음, 블랙코미디

by Godot82 2026. 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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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코미디_Black Comedy
블랙코미디_Black Comedy

1.  '블랙코미디(Black Comedy): 금기를 건드리는 불편한 웃음

겨울바람이 매섭다.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으면, 가끔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뉴스는 비극적인 사건들을 건조하게 나열하고, 사람들은 각자의 고통을 안고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이 팍팍하고 때로는 잔혹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제정신을 유지하며 살아가는가.

 

나는 그 답 중 하나가 '웃음', 그것도 아주 쓰고 어두운 웃음에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블랙코미디(Black Comedy)'다. 블랙코미디란 무엇인가. 사전적으로는 '죽음, 질병, 전쟁, 범죄 등 일반적으로 심각하거나 비극적인 소재를 유머와 풍자의 대상으로 삼는 코미디 장르'를 뜻한다. 쉽게 말해, 웃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이다.

 

가장 엄숙해야 할 장례식장을 상상해 보자. 모두가 슬픔에 잠겨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갑자기 조문객 중 누군가가 너무 긴장한 나머지 방귀를 크게 뀌었다거나, 상주가 절을 하다가 바지가 찢어졌다고 치자. 그 순간, 슬픔이라는 거대한 압력 밥솥의 김이 '피식' 하고 새어 나온다. 우리는 웃음을 참으려 입술을 깨물지만, 상황의 부조화가 주는 원초적인 우스꽝스러움은 어쩔 도리가 없다.

 

이때 우리의 웃음은 단순히 즐거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금기(Taboo)'를 건드렸을 때 오는 불편함과 해방감이 뒤섞인 복합적인 반응이다. 금기란 사회적, 도덕적으로 하거나 말해서는 안 된다고 여겨지는 것을 말한다. 죽음이나 고통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금기다. 블랙코미디는 이 성역의 문턱을 보란 듯이 넘나 든다.

 

마치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과 같다. 그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서 균형을 잡는 순간 기묘한 쾌감이 발생한다. 이 쾌감은 우리가 애써 외면해 왔던 삶의 어두운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그래서 블랙코미디를 본 직후의 기분은 개운하기보다는 어딘가 씁쓸하고 찝찝하다. 

2. 반지하의 냄새와 기생충의 계단: 부조리를 폭로하는 사회학적 메스

사회학적인 시선으로 볼 때, 블랙코미디는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그것은 부조리한 사회 구조를 해부하는 날카로운 메스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블랙코미디의 정수를 보여준다. 영화는 시종일관 웃기지만, 그 웃음 밑바닥에는 한국 사회의 견고한 계급 갈등이 시커먼 지하수처럼 흐른다.

 

주인공 가족이 박 사장네 거실 테이블 밑에 숨어 숨죽이고 있을 때, 관객은 그 상황의 코믹함에 웃으면서도 동시에 들킬까 봐 손에 땀을 쥔다. 가장 잔인하면서도 웃픈 순간은 박 사장이 '지하철 타는 사람들 특유의 냄새'에 대해 이야기할 때다. 그 냄새는 가난의 낙인이자, 아무리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계급의 선이다.

 

이 심각한 주제를 영화는 대놓고 무겁게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그 냄새를 맡고 코를 쥐는 박 사장의 사소한 행동을 통해 우스꽝스럽게, 그래서 더욱 비극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서 작동하는 핵심 기제는 '풍자(Satire)'와 '아이러니(Irony)'다. 풍자는 '사회의 부정적인 면이나 인간의 어리석음을 비꼬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이고, 아이러니는 '예상 밖의 결과가 빚은 모순이나 부조화'를 뜻한다.

 

부자들은 너무 순진해서 바보 같고, 가난한 자들은 생존을 위해 악당이 되어야 한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 자체가 거대한 블랙코미디다. 우리는 영화를 보며 낄낄대지만, 극장을 나서는 순간 깨닫는다. 우리가 웃었던 그 '웃픈' 상황이 바로 내일 아침 내가 마주해야 할 현실이라는 것을. 블랙코미디는 그렇게 현실의 잔혹함을 한 꺼풀 벗겨내 우리 눈앞에 들이민다.

3. 조커의 웃음: 무너지는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방어 기제

개인의 차원에서 블랙코미디는 고통을 견디기 위한 심리적인 도구이기도 하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나 공포가 닥쳤을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이때 작동하는 것이 '방어 기제(Defense Mechanism)'다. 영화 <조커>의 아서 플렉을 떠올려보자. 그는 고통스럽거나 당황스러운 상황에 부닥치면 발작적으로 웃음을 터뜨린다.

 

그의 웃음은 기쁨의 표현이 아니라, 울음의 다른 형태다. 세상의 폭력과 무관심 앞에서 그가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모든 비극을 차라리 웃어넘겨 버리는 것이다. "내 인생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빌어먹을 코미디였어"라는 그의 대사는 블랙코미디의 본질을 관통한다.

 

블랙코미디는 최악의 상황에서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오기이자 저항이다. 거대한 비극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을 때, 우리는 차라리 그 비극을 조롱함으로써 심리적 우위를 점하려 한다. "그래, 세상아. 네가 아무리 나를 괴롭혀봐라. 내가 우나, 웃지." 이런 태도다. 그것은 처절하지만, 동시에 강인한 생존 본능의 발현이다.

4. 웃음이라는 수행: 박제된 고통에 균열 내기

우리가 고통스러운 주제를 가지고 농담을 할 때, 그 고통은 더 이상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머물지 않게 된다. 박제되어 있던 딱딱한 비극에 균열이 생긴다. 예를 들어, 독재 정권 시절에 사람들이 은밀하게 나누던 정치 풍자 유머들을 생각해 보자. 그 서슬 퍼런 권력 앞에서 대놓고 저항할 수는 없었지만, 사람들은 권력자를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는 농담을 통해 그들의 권위를 아주 조금씩 갉아먹었다.

 

블랙코미디는 세상을 당장 뒤집어엎지는 못한다. <기생충>의 기택 가족은 결국 반지하로 돌아갔고(혹은 더 나쁜 곳으로), 현실의 우리도 여전히 각자의 부조리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한번 터뜨린 그 쓴웃음 덕분에, 우리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공포나 권위가 사실은 한바탕 우스개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날이 저물고 책상 위에 놓인 식어버린 커피를 마신다. 쓰다. 인생도 그렇다. 달콤하기보다는 쓸 때가 더 많다. 블랙코미디는 이 쓴 커피를 마시면서 "젠장, 더럽게 쓰네. 그래도 아직 완전히 식지는 않았군"이라고 중얼거리는 태도와 비슷하다. 우리는 완벽한 세상에서 살 수 없다. 비극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오고, 구조적인 모순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이 시커먼 유머가 필요하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부르는 휘파람처럼, 살얼음판 위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내는 헛기침처럼. 그것이 비록 씁쓸한 뒷맛을 남길지라도, 오늘 밤을 버티게 하는 작은 위안이 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 가끔은 그냥 웃어버리자. 세상이 미쳐 돌아갈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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