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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은 왜 거기에 있는가, 라는 오래된 질문: 형이상학(Metaphysics)

by Godot82 2025.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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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Metaphysics
형이상학-Metaphysics

 

1. 형이상학 (Metaphysics)

 

 

언젠가 늦은 오후, 서가 앞에서 낡은 책을 꺼내 들었던 적이 있다. 책장은 약간 휘어 있었고, 종이는 햇빛에 바래 있었다. 그런데 그 물건이 거기에 있다는 사실, 그 단순한 존재감이 이상하게 마음을 끌었다. ‘왜 이 책은 이 자리에, 이 순간, 이 상태로 존재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불쑥 들어왔다. 형이상학은 바로 이런 순간에 시작된다.

 

보이는 것 너머를 향해 시선을 조금 옆으로 기울이는 행동. 사물에 그림자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닫는 아이의 놀라움처럼. 고대 철학자들은 이 세계의 바깥, 그보다 한 층 깊은 자리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했다. 눈앞의 물건들, 사건들, 감정들 뒤편에서 조용히 흐르는 원리를 찾고 싶어 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보고 있는 영화의 배경 음악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지만 쉽게 들리지 않는 뭔가다. 형이상학은 바로 그 소리를 듣는 철학이다. 물리적인 세계 너머(meta-)의 것들을 탐구하는 학문으로 눈에 보이는 사물의 근원, 본질, 존재의 이유를 묻는 철학의 한 분야이다.

2. 형이상학은 ‘저기’가 아니라 ‘옆’을 바라보는 방법

형이상학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설명하면 딱딱하게 들린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늘 우리 곁에 있다. 아주 사소한 순간에, 예를 들면 컵에 담긴 물이 흔들릴 때, 버스 창을 스치는 바람이 얼굴을 만질 때, 오래된 거울 속 나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어 있을 때.

 

이런 순간들에서 우리는 현실의 표면을 넘어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런 미묘한 균열을 늘 포착했다. 일상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드러나는 ‘대단히 사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것들’을 그녀는 수십 줄의 문장으로 조용히 감싸냈다. 형이상학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보고 있는 세계는 단지 표면일 뿐, 그 아래에는 더 넓고 조용한 세계가 있다.” 그러니 형이상학은 멀리 가는 학문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이미 가진 감각 바로 옆, 아주 가까운 자리에 기대어 있다.

3. 대중예술이 알려주는 형이상학의 얼굴

형이상학은 철학자의 책상 위에만 놓여 있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대중예술은 늘 형이상학적 질문을 던져왔다. 그 질문들은 가끔은 아주 직접적이기도 하고, 가끔은 은유 속에 숨겨지기도 한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지만, 결국 가장 깊게 파고드는 질문은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어디에서 오는가?”이다. 사랑이 공간을 구부리고 시간을 비틀 수 있다는 암시는, 존재의 근본을 탐색하려는 형이상학적 상상력의 전형이다.

 

영화 <어바웃 타임>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주인공은 결국 ‘삶의 본질’을 질문하게 된다. 그는 사건보다 사건을 가능하게 하는 어떤 흐름, 삶의 ‘깊은 구조’를 느끼게 된다. 이것이 형이상학이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이름을 잃으면 존재도 흐려진다’는 세계관 자체가 이미 형이상학적이다. 이름은 단지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 존재를 묶어주는 ‘근본 형식’이라는 의미. 형이상학은 이렇게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 속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4. 형이상학의 질문들은 언제나 조용히 다가온다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책 한 권을 떠올려보자. 그 책은 오랫동안 책장에 꽂혀 있다가, 어느 날 우연히 다시 발견된다. 우리는 그 책을 열자마자 “아, 이 장면 기억난다”라고 말하며 웃는다. 그런데 그 순간 떠오르는 기억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 내 머릿속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걸까? 이 질문 속에는 이미 형이상학이 숨어 있다.

 

기억이라는 ‘보이지 않는 것’이 어떻게 나를 구성하는가? 나는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몸과, 이 보이지 않는 기억들 사이에서 어떻게 하나의 ‘나’가 되는가? 형이상학은 단지 우주의 기원을 묻는 학문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묻는 정서적인 철학이다.

5. 형이상학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가장 오래된 속삭임

가끔 나는 책상 위에 놓아둔 찻잔을 바라본다. 찻잔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거기에 있다. 그러나 그 ‘거기에 있음’은 우리를 이상하게 흔든다. 그냥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여러 질문을 우리 속으로 들여보낸다. 왜 나는 이 물건을 ‘찻잔’이라고 부르는가? 왜 그것은 사물이고, 나는 주체일까? 내가 없더라도 이 찻잔은 존재할까? ‘존재한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런 질문들이 바로 형이상학이다. 물론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형이상학은 정답을 주는 학문이 아니라, 질문을 유지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6. 형이상학은 결국, ‘나를 다시 바라보는 길’

우리가 형이상학을 이해하는 것은 결국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왜 여기 있는가? 내가 보는 세계는 왜 이 모양인가?내가 사랑하는 이들은 왜 나에게 그런 의미인가? 나는 시간이 지나도 같은 나인가? 이 질문들은 모두 형이상학적이다. 그리고 이 질문들은 한 사람의 삶 속에서 끝없이 반복된다.

 

형이상학은 멀리 있지 않다. 늘 우리 안에 있다. 우리가 말하지 못하는 감정의 밑바닥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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