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밍크코트 (Jesus Hospital)
2012년 1월, 영화 <밍크코트>는 그렇게 눅눅한 계절 속에서 조용히 극장가에 들어왔다. 신아가, 이상철 공동 감독의 이 작품은 화려한 스펙터클이나 자극적인 줄거리 대신, 어깨가 잔뜩 굽은 중년 여성 하나의 뒷모습을 따라간다.
우유 배달을 하며 하루하루를 견디는 현순(황정민)은 오래전 자신이 포기한 딸과 마주하고, 밍크코트 한 벌을 건네받으며 그들의 재회가 시작된다. 이 영화가 그리고 있는 여성들의 삶, 특히 중년 여성의 노동과 외로움은 여전히 통계 바깥의 존재로 남아 있었다. <밍크코트>는 그 바깥의 이야기다. 엄마는 미안하고, 딸은 서운하며, 며느리는 거슬린다.
세 명의 여성이 밍크코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묵은 감정을 꺼내놓는 풍경은, 가족이라는 구조 안에서 말없이 희생되어 온 감정의 맨살을 들춰낸다. <밍크코트>는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비전 부문에 초청되며 주목을 받았다.
2. 줄거리
밍크코트는 이 영화에서 가장 분명한 오브제다. 처음 딸이 건넸을 때, 현순은 딸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한다.
하지만 코트는 옷이 아니다. 그것은 책임의 무게고, 눈치의 온도고, ‘받았으니 갚아야 한다’는 무언의 강박이다. 밍크코트를 입은 사람은 점점 굽는다. 따뜻하지만 불편하다. 포근하지만 부담스럽다.
이 영화는 그 상징을 강요하지 않고, 스르륵 스쳐 지나가게 한다. 마치 잘못 보관된 밍크털처럼, 말없이 부풀었다가 흐느적거리며 꺼진다.
3. 배우 황정민
여성 배우 황정민(1969.05.23~ )은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이다. 화장을 거의 하지 않은 얼굴, 퉁퉁 부은 눈, 불규칙한 호흡 속에서 그녀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현순은 비명을 지르지도 않고, 눈물을 흘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영화가 끝날 즈음, 관객은 그녀의 걸음걸이 하나까지 기억하게 된다.
세 여성이 서로를 피해 돌아다니고, 결국엔 정면을 바라보지 못한 채 엇갈리는 구조 속에서, 이 영화는 모성이나 가족에 대한 낭만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다.
4. 마치며
<밍크코트>는 관객에게 “너도 이런 관계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지 않느냐”라고 조용히 물었다. 이 영화는 사회비판적이지도 않고, 실험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사소한 감정이 지속될 때 그것이 얼마나 무거워지는지’를 정직하게 그려낸다. 마지막 장면에서, 밍크코트는 또 한 번 옮겨간다.
받을 수 없고, 주고 싶지 않고, 입기에도 거북한 그 코트는 결국 다시 어디론가 떠난다. 사람들은 말 대신 옷을 건넨다. 미안함도, 애정도, 원망도, 다 그렇게 입혀진다. <밍크코트>는 그런 감정의 외투에 대한 영화다. 누구에게도 정확히 맞지 않지만,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는.
그래서 사람들은 오늘도 그것을 들고 출근한다. 무겁고, 뻣뻣하고, 어깨가 자꾸 아파오는 외투. 그게 가족이고, 사랑이고, 혹은 그냥 겨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