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버려진 것들이 일구는 눈부신 연대: 엘 아나추이( El Anatsui)
런던 테이트 모던의 거대한 터바인 홀을 메우고 있던 황금빛 물결, 멀리서 보면 중세 귀족의 화려한 태피스트리나 고귀한 비단 커튼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드러나는 실체는 단단하고 차가운 금속이다. 그것은 버려진 술병의 알루미늄 뚜껑들을 구리선으로 엮어 만든 거대한 조각이다.
가나 출신의 거장 엘 아나추이(El Anatsui)의 작업은 이처럼 시각적 화려함 뒤에 서늘한 역사적 통찰과 사회학적 비유를 숨기고 있다. 그의 작업은 단순한 조형물을 넘어, 인간의 욕망과 역사의 상흔을 꿰매는 장엄한 의식으로 다가온다.
2. 안요코에서 세계로 흐르는 예술적 여정
엘 아나추이는 1944년 가나의 안요코에서 태어나 쿠마시 과학기술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그는 이후 나이지리아로 건너가 나이지리아 대학교에서 수십 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자신의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201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평생공로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랐고, 최근에는 테이트 모던의 현대 커미션 작가로 선정되어 그 위상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그의 삶은 가나와 나이지리아라는 지역적 기반을 유지하면서도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현대판 유목민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는 조소라는 전통적인 장르에 머물지 않고 나무, 점토, 그리고 버려진 금속 뚜껑을 오가며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내는 전방위 예술가이다.
3. 술병 뚜껑 속에 박힌 식민지의 기억과 탈식민주의의 미학
그의 대표작을 구성하는 핵심 재료인 술병 뚜껑(Bottle caps)은 단순한 폐기물이 아니라 아프리카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증언하는 매개체이다. 여기서 우리는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라는 중요한 개념을 마주하게 된다. 탈식민주의는 식민 지배를 겪은 국가들이 그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정체성을 되찾으려는 문화적, 정치적 흐름을 뜻한다.
이를 일상적인 예로 들면, 과거에는 우리말보다 영어를 섞어 쓰는 것이 세련되게 느껴지던 인식을 버리고, 한국만의 독특한 판소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이날치' 밴드의 음악 같은 시도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아프리카에서 술은 유럽 열강들이 노예를 사고팔 때 결제 수단으로 사용했던 비극적인 도구였다.
아나추이는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술병 뚜껑을 수집함으로써 그 속에 박힌 식민지 무역의 잔재와 자본주의의 탐욕을 끄집어낸다. 그는 이 뚜껑들을 두드려 펴고 구리선으로 연결하는데, 이 과정은 흩어진 역사의 파편들을 다시 잇는 치유의 작업이다. 우리가 흔히 입는 청바지(Denim)가 처음에는 광부들의 거친 작업복이었으나 지금은 전 세계인의 패션 아이템이 된 것처럼, 그는 비천한 쓰레기를 찬란한 예술적 직물로 승화시키는 연금술을 보여준다.
4. 고정된 형식을 거부하는 유연한 구조주의와 수행성
엘 아나추이의 작품은 전시장마다 걸리는 방식이나 접히는 모양, 늘어지는 각도가 매번 다르다. 작가는 설치 전문가들에게 "당신들이 원하는 대로 구겨보고 펼쳐보라"라고 권하며 작가로서의 절대적인 권위를 내려놓는다. 이러한 태도는 현대 미술의 수행성(Performativity)과 깊은 관련이 있다.
수행성이란 어떤 행위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그 자체로 새로운 사건을 만들거나 상황을 변화시키는 성질을 말한다. 아이돌 가수의 앨범 그 자체보다 그 노래에 맞춰 전 세계 팬들이 각기 다른 장소에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춤을 추는 '챌린지' 영상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흐름을 생각하면 된다.
또한 그의 작업은 사회학의 구조주의(Structuralism)적 시각을 뒤집는다. 구조주의는 사물을 개별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맺고 있는 전체적인 관계와 체계 속에서 의미를 파악하려는 이론이다. '레고(LEGO)' 블록 하나는 아무 의미가 없지만 그것들이 어떤 규칙으로 연결되느냐에 따라 성이 되기도 하고 자동차가 되기도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나추이의 작품은 수만 개의 낱개가 모여 거대한 체계를 이루지만, 그 체계는 고정되지 않고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유동적 구조'를 가진다. 그는 서구의 단단하고 불변하는 조각 개념을 거부하고, 아프리카 전통 직물인 켄테(Kente) 천처럼 부드럽고 유연한 미학을 제시한다.
5. 아상블라주를 통한 파편들의 눈부신 연대
그의 작업 방식은 서로 관련 없는 물건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형상을 만드는 기법인 아상블라주(Assemblage)의 정수를 보여준다. 아상블라주는 냉장고에 남은 자투리 채소와 찬밥을 섞어 맛있는 비빔밥을 만들어내거나, 잡지를 오려 붙여 새로운 그림을 만드는 콜라주와 비슷한 원리이다. 엘 아나추이는 수많은 지역 주민과 조수들과 함께 뚜껑을 엮는 작업을 수행한다.
이는 단순히 노동을 분담하는 것이 아니라 소외된 이들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사회적 연대의 실천이다. 마블 영화 '어벤져스(Avengers)'에서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진 영웅들이 모여 하나의 팀을 이루듯, 작가는 버려진 파편들을 모아 거대한 서사를 구축한다.
작품 앞에 서면 금속 조각들이 부딪히며 내는 미세한 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것은 소비되고 버려진 것들의 아우성이자 다시 일어서려는 생명력의 노래이다. 대리석이나 금처럼 귀한 재료가 아니라 보잘것없는 쓰레기가 모여 이토록 숭고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은 파편화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위로를 건넨다.
6. 유목민적 사유가 만들어낸 시대의 피부
엘 아나추이의 예술은 경계를 허무는 작업이다. 조각과 회화, 예술과 쓰레기, 그리고 아프리카와 서구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유목민(Nomad)처럼 자유롭게 떠돈다. 그는 한 곳에 정착하여 고정된 형식을 고집하지 않고 재료의 물성(Materiality)을 탐구하며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물성이란 재료가 가진 고유한 성질을 뜻하는데, 아나추이는 차가운 금속을 뜨거운 노동으로 이어 붙여 직물처럼 부드럽게 변모시킴으로써 재료의 한계를 극복한다. 그의 작품은 거대한 '막(Membrane)'과 같다. 그것은 우리를 가로막는 단단한 벽이 아니라 바람에 흔들리고 빛을 반사하며 주변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부드러운 피부다.
이는 세계화(Global)와 지역화(Local)가 결합된 글로컬리즘(Glocalism)의 훌륭한 사례이기도 하다. 아프리카라는 지역적 소재를 세계적인 예술 언어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낱개로는 보잘것없지만 서로의 손을 잡았을 때 비로소 찬란한 빛을 발하는 그 풍경은 우리에게 연대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상처를 가진 버려진 뚜껑 같은 존재일지 모르나, 서로를 잇는 작은 구리선 하나만 있다면 누군가의 눈을 멀게 할 만큼 눈부신 황금빛 물결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그는 몸소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전 세계 주요 미술관의 벽면을 장식하며 지금도 매번 다른 모습으로 관객과 대화하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그 거대한 금속의 숲 앞에서 직접 숨을 쉬어보길 권한다. 차가운 금속이 건네는 따뜻한 온기와 버려진 것들이 일구는 눈부신 연대의 현장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 장엄한 수행의 기록은 당신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예술적 지도를 그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