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포페니아(apophenia)
한 아이가 흰 종이에 아무렇게나 휘갈긴 낙서를 들여다본다. “이거 곰이 웃는 모습이야.” 그 말에 눈을 찌푸리며 보던 어른도, 문득 그런 것 같다고 느낀다. 사실은 곰이 아니라, 그냥 삐뚤빼뚤 선일뿐인데. 이게 바로 아포페니아(apophenia)다. 존재하지 않는 패턴이나 의미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내는 심리적 현상. 마치 TV에서 나온 잡음 속에서 어떤 단어를 들었다고 느끼는 것처럼, 뇌는 빈 공간에 스토리를 그린다.
2. 아포페니아의 시작
이 개념을 처음 이야기한 사람은 '클라우스 콘라드(Klaus Conrad)'라는 독일의 정신과 의사였다. 1958년, 그는 조현병 초기 환자들의 증상을 설명하면서 이 말을 썼다. 환자들이 일상 속에서 의미 없는 소리나 이미지에서 특별한 메시지를 느끼는 현상. 그는 그것을 “Apophänie”, 즉 아포페니아라 불렀다. 이후 이 개념은 일반적인 심리학에서도 널리 쓰이게 된다. 병의 증상으로도, 누구나 겪는 착각으로도 말이다.
3. 절묘한 타이밍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저 구름, 고래 같아!” 하고 말할 때, 친구한테 문자가 왔는데 그 숫자가 우연히 내가 좋아하던 번호일 때, 라디오에서 들리는 가사 한 줄이 지금 내 상황과 너무 잘 들어맞을 때, 그럴 리 없다고 알면서도 자꾸 신호처럼 느껴지는 것들. 우리는 그렇게 일상의 우연에 의미를 부여한다. 불안할수록 더 그렇다. 사랑에 빠졌을 때도, 실연을 겪었을 때도, 뭔가 예감이 좋거나 나쁠 때도 마찬가지다.
4. 뇌의 본능
인간의 뇌는 패턴을 찾는 데 천부적인 능력이 있다. 단 두 개의 점이 있어도 우리는 그 사이에 선을 그으려 한다. 별을 보고 ‘오리온자리’라고 부르고, 시계 소리에서 ‘내 이름’을 듣기도 한다. 이는 생존과도 관련이 있다. 위험을 예측하고, 주변 환경을 빠르게 해석하려는 뇌의 본능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능력이 과도하게 작동하면, 거기 없는 의미까지 만들어낸다. 존재하지 않는 신호를 해석하려 애쓴다.
5. 믿음과 착각
어떤 사람이 길거리에서 검은 고양이를 보고는 가던 길이 아닌 먼 길로 집에 간다. 그게 불길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숫자 4를 보면 무조건 피한다. ‘죽을 사(死)’와 발음이 같아서다. 점쟁이의 한마디에 “이건 운명이야” 하고 무릎을 치는 사람도 있다. 모두 아포페니아의 일종이다. 의미 없는 것들 사이에 인과를 만들어내고, 마음대로 연결한다. 그래서 착각은 때때로 믿음이 되고, 믿음은 현실을 바꾸기도 한다.
6. 내 안에 아포페니아
사람은 누구나 조금씩 아포페니아를 가지고 있다. 일기예보를 믿지 않으면서도, 비 오는 날은 괜히 우울하다. 시험 전에 듣는 노래가 결과에 영향을 줄 것 같고, “괜찮을 거야”라는 말이 진짜 마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착각이지만, 때로는 착각이 우리를 위로한다. 그러니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단, 그 착각이 너무 커져 현실을 덮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