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학과 계급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또렷하진 않다. 처음엔 한국 문학에서 계급 이야기를 해보자고 생각했는데, 말하다 보니 자꾸 어떤 기억들이 맴돈다. 가령, 국민학교 4학년쯤 됐을 때, 운동화가 다 해져서 새 걸 사달라고 했더니 엄마가 말했다. ‘비 오는 날만 발 안 젖으면 되잖아.’
그 말을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날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었지만, 이상하게 발끝이 축축한 느낌이 들었다. 그게 가난이었다.
계급이라는 단어보다 먼저 배운 감각이었다. 문학에서도 그랬다. 직접적으로 계급이란 단어는 등장하지 않았다. 용어가 아닌 느낌으로 나는 계급을 알아챘다.
2. '난장이'의 계급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처음 읽었을 땐 그저 특이한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그 공보다 먼저 ‘가난’이 보였고, 가난을 지속하게 하는 그들의 신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난장이 가족의 삶이 마치 내 뒷집 아주머니네 이야기처럼 익숙했다.
작고 왜소한 아버지, 가난하고 힘이 없는 가족들, 재개발로 살던 곳에서 밀려나는 사람들. “철거”라는 말로 정리되는 삶. 그들은 싸울 수도 없다. 그저 밀려나기만 한다. 권리가 없다는 말로 일방적으로 내쫓긴다. 끝까지 몸부림치며 투쟁하고 싸우려 했지만 결국 사라지는 건 약한 사람들이다. 그 조용한 투쟁을 조세희 작가는 보여준다. 그게 이 소설의 힘이었다.
3. 문학 속 계급
사실, 우리는 ‘계급’이라는 단어에 익숙하지 않다. 어디선가 배웠지만, 피부엔 와닿지는 않는다. 그래서 문학은 말 대신 냄새, 질감, 습기를 사용한다. 반지하에서 사는 인물이 입은 옷에서 풍기는 덜 마른 빨래 냄새, 습기 찬 장판에서 느껴지는 눅눅함, 한겨울에도 따뜻해지지 않는 손등. 이런 것들이 문학에서 계급을 말하는 방식이다.
김애란 작가의 단편인『비행운』이나 『침이 고인다』 같은 작품 속 인물들은 자신이 가난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묘사를 통해 그들의 계급을 보고 느낄 수 있다.
4. 마치며
계급이라는 개념은 마르크스에서 비롯됐다. 그는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라고 했다. 하지만, 문학은 계급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건 교과서나 강의실이 할 일이다. 문학은 다만 보여준다. 한 아이가 고무신을 끌고 학교를 걸어가는 모습, 여름에도 에어컨이 없는 일터로 향하는 아버지, 버스 안에서 지쳐 잠이 든 엄마. 계급은 그런 풍경에서, 말없이 나타난다.
누구나 자기가 본 장면을 떠오르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자기가 버렸던 운동화를, 어떤 이는 냄새 때문에 놀림받던 급식시간을. 그래서 문학은 설명이 아니라 기억인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운동화를 사달라고 했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앞서 언급했듯 그날은 맑았지만, 발끝이 젖어드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문학은 결국 그 젖은 발끝을 잊지 않게 해주는 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