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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빼앗긴 문장들: 식민지 시대 문학

by Godot82 2025.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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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문학
식민지 문학

 

1. 한국 문학의 시작점

식민지 시절, 우리에게서 가장 먼저 사라졌던 건, 말이었다. 그 말이 사라진 자리에서, 한국 문학은 시작됐다. 잃어버린 말들을 찾아 쓰는 것. 그게 이 땅의 문학이 처음 배운 문장 쓰기였다.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였다. 이 시기, 사람들은 두 가지를 잃었다. 나라와 언어. 그리고 문학은 그중에서도 말에 대해 가장 깊이 반응했다. 식민지 정부는 학교에서 조선어를 금지하고 일본어를 강요했다. 신문과 잡지, 방송도 마찬가지였다.
시장에서조차 “조선말 쓰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붙었다.

그런 상황에서 작가들이 할 수 있었던 건, 우리말을 지키는 것, 우리말의 자리를 되찾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문장은 종종 숨이 찼다. 급히 써 내려간 듯, 자꾸 숨을 고르듯 쉼표가 많고, 때로는 주어가 빠졌다. 그러나 그건 식민지 현실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된 결핍이었다. 

2. 문학이라는 은신처

이광수의 『무정』(1917)은 종종 한국 최초의 근대 소설로 언급된다. 그러나 이 작품이 진짜로 중요했던 건, ‘근대’라는 이상을 조선어로 그려낸 최초의 시도였다는 점이다. 당시 조선은 근대화의 갈림길에 있었고, 이광수는 지식인의 자의식과 혼란을 통해 그 불안을 보여줬다.

그가 만든 인물들은 어딘가 덜 자랐고, 말을 많이 하지만 핵심은 없고, 사랑을 해도 머뭇거린다. 그건 단지 소설의 특징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를 사는 청춘의 ‘어쩔 수 없음’이었는지도 모른다. 문학은 그렇게, 회피인 동시에 은신처가 되기도 한 것 같다. 당장은 이기지 못해도, 살아남겠다는 생존의 방식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3. 민족 문학의 태동

시간이 흐르면서, 문학은 더 직접적으로 저항의 얼굴을 갖는다. 염상섭, 현진건, 채만식, 이상…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식민지 현실을 쓰고, 말을 되찾으려 했다.

 

염상섭의 『삼대』에서는 가족과 세대의 갈등을 통해, 잃어버린 민족적 정체성을 말한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에서는 겨우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인력거꾼이 아내의 죽음도 모른 채 끌고 다니는 인력거에 조선인의 현실이 실려 있다. 이 소설은 비극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보여줄 뿐이다. 거기서 슬픔은, 절망보다 더 잔인해진다.

4. 상처를 쓰는 글쓰기

1930년대, 채만식은 『태평천하』에서 조롱과 풍자를 택했다. 부자 지주의 허세와 무기력을 그려낸 그는 웃기지만 웃을 수 없는 글을 썼다. 그의 문장들은 자주 휘청거렸다. 의성어, 의태어, 이상한 말장난, 그 모든 것들이 ‘지금 이 말로는 진실을 다 담을 수 없다’는 절규처럼 느껴진다.

반면, 시에서는 이상의 시가 독특한 방식으로 식민지의 균열을 표현한다.『오감도』 같은 실험시는 당대 독자에게조차 불친절했다.
그러나 그 비틀린 언어, 불연속적인 이미지, ‘13인의 아해가 도로를 질주한다’는 불길한 문장은 바로 그 불편함이 현실이라는 사실을 드러냈다. 말은 있는데, 이해되지 않는 시대말이다.

5. 마치며

식민지 시대의 문학은 단지 ‘저항’만을 하지 않았다. 어떤 때는 애써 웃었고, 어떤 때는 비꼬았고, 어떤 때는 슬픔을 삼켰다. 그리고 그 감정의 조각들이 지금도 문학 속에 살아 있다. 말을 잃어본 적이 있는 문장들. 한 줄을 쓰기 위해 수십 번 되뇌는 리듬. 의성어 하나에도 숨이 실려 있는 글.

식민지 시대를 산 작가들은 ‘말이 없을 때,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고민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문장은 설명이 아니라 흔적이다. 숨은 쉬었고, 발은 걸었고, 말은 메모처럼 남겨졌다. 그 문장들을 읽으면 우리도 그 시대를 걷는 것처럼 느껴진다. 발끝이 젖고, 말이 더뎌지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감각.

한국 문학은 바로 그 길 위에서 출발했다. 말이 없던 시대에, 말이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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