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섯 번째 흉추_The Fifth Thoracic Vertebra
"다섯 번째 흉추"는 시대의 불안, 폐허와 잔재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는가를 묻는 영화다. 영화는 호러와 괴생명체의 몸, 감정의 외피가 뒤틀리는 초현실적 풍경이 혼합돼 있다. 관계 뒤에 남은 말과 상처, 약속과 저주 같은 묵직한 무게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게 영화는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
2. 줄거리
버려진 침대에서 곰팡이가 피어난다. 이 침대는 관계가 끝난 후 남은 것들 가령 버리기 힘든 것들, 말로 다 못한 감정들, 저주, 약속 희망 혹은 절망의 파편들의 숙주가 되어 어느 순간, 곰팡이에서 괴생명체가 태어난다. 이 생명체는 단순히 곰팡이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섯 번째 흉추"를 먹는 존재다.
흉추(thoracic vertebra)는 등뼈(spine) 중 흉부(chest) 쪽 갈비뼈(ribs)와 연결되는 척추뼈(spinal bone) 중 하나고, 다섯 번째 것은 중간쯤 자리해서 심장 가까이, 폐 가까이 위치해. 상징적으로 말하면 관계의 중심부, 숨 쉬는 부분, 말하지 못한 것들의 무게를 견뎌내는 곳이다.
생명체는 침대 매트리스에서 자라나고, 그것을 쓰고 버리는 사람, 새로 가져가는 사람, 모텔, 병실 혹은 거리를 떠돌아다닌다. 각 장소마다 주인의 감정, 상실, 외로움과 분노, 저주가 다르게 배어 있고, 매트리스 괴물은 그것을 먹고 자라 점점 인간의 형태를 갖춘다. 어쩌면 괴물은 우리 내면에 남겨진 잔재들이 합쳐 만들어진 것들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하게 한다.
3. 버려진 것들
이 영화는 버려진 침대 매트리스라는 사물이 아주 사적인 공간에 있다가 외부로 나오면서 "우리가 버린 감정들은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관계가 끝난 뒤 남는 약속, 저주, 분노, 미련, 부끄러움, 후회 등 말로는 다 하지 못한 말들이 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끝난 관계라는 말로 덮어 버리지만, 속으로는 그렇지 않다.
공포 영화라고 하면 흔히 괴물의 잔혹함 등의 요소에 집중하지만 이 영화는 다르다. 내면의 죄책감과 불안, 관계의 균열, 상실감 같은 감정들을 시각과 소리와 질감으로 표현한다. 이 영화에서 공포는 예고 없이 나타나 혼비백산으로 몰아넣는 것이 아닌 조금씩 조용하게 기이한 방식으로 퍼진다. 마치 곰팡이처럼 증식한다.
4. 마치며
연인이었거나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끝내하지 못한 말이 마음속에 남아 있는 사람, 관계가 끝나고 남은 상처나 후회를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고 싶은 사람, 사적인 공간에 물건들이 가진 기억과 정서를 오래 들여다보고 싶은 사람, 시각 미술과 사운드 딛자인, 색채와 조명 등의 영화적 요소를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보기를 추천한다.
처음엔 기이하고 혐오스럽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이 되면 그 이상함과 기괴함이 애틋함으로 혹은 연민으로 변하는 순간들을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