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한국 실험미술의 살아있는 기록: 이건용 (Lee Kun-Yong)
이건용은 1942년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평양에서 목회 활동을 하던 목사였고, 서재에는 수많은 장서가 가득했다. 어린 시절부터 탐독했던 철학, 종교, 문학 서적들은 훗날 그가 '논리적'이고 '개념적'인 미술을 개척하는 지적 자양이 되었다. 한국전쟁 중 월남하여 서울에 정착한 그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에 입학한다.
하지만 그는 당시 화단을 지배하던 추상화(앵포르멜)의 거친 붓질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왜 그림은 꼭 캔버스를 마주 보고 그려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캔버스 밖의 실제 세계와 인간의 신체로 눈을 돌렸다. "예술가가 캔버스를 보지 않고 그림을 그린다면, 그것은 실패작일까 아니면 새로운 시작일까?"
한국 실험미술의 거장, **이건용(Lee Kun-Yong)** 그는 화가라기보다 철학자에 가깝고, 기록자라기보다 수행자에 가깝다. 그가 1970년대라는 엄혹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온몸으로 써 내려간 '논리'는 오늘날 디지털 스크린 속에 갇힌 우리에게 몸의 실체를 다시 묻는다. 오늘은 유목민적 사유를 따라, 이건용이라는 거대한 산맥이 한국 미술사에 남긴 흔적을 일상의 언어로 복원해보려 한다.
2. 화폭 뒤에서 손을 뻗는 사람: '신체드로잉'의 탄생
이건용 작가를 대중에게 가장 각인시킨 작업은 단연 신체드로잉(Bodyscape) 시리즈다. 보통의 화가들은 캔버스 앞에 서서 눈으로 구도를 잡고 손을 움직인다. 하지만 이건용은 다르다. 그는 캔버스 뒤에 서서 팔을 앞으로 뻗어 선을 긋거나, 캔버스를 등지고 선을 그린다.
작가가 화면을 마주 보지 않고, 자신의 신체적 한계(팔의 길이, 관절의 가동 범위 등) 내에서 선을 긋는 행위를 통해 완성되는 드로잉이다. 작가는 이를 '신체의 풍경'이라 부른다. 일상의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가끔 가려운 등 뒤를 긁을 때, 손이 닿는 곳까지만 긁을 수 있다는 신체적 한계를 실감한다.
혹은 눈을 감고 자신의 얼굴을 그려보는 놀이를 할 때, 머릿속의 이미지보다 내 손끝이 느끼는 감각에 의존하게 된다. 이건용의 신체드로잉은 바로 그 '닿음'의 한계를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다. VR(가상현실) 게임을 하는 사용자를 떠올려보자. 헤드셋을 써서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컨트롤러를 휘두를 때, 그 움직임이 가상공간에 선으로 남는다면 어떨까?
이건용은 1970년대에 이미 자신의 몸을 하나의 '컨트롤러'로 삼아 물리적 세계에 흔적을 남겼다. 그의 선은 미적인 완벽함이 아니라, "내 몸이 여기까지 닿았다"는 존재의 증명이다.
3. 빵을 먹는 법, 혹은 존재를 증명하는 법: '논리적 이벤트'
이건용의 또 다른 걸작은 1975년에 발표된 **<달팽이 걸음>**이나 <이벤트-로지컬(Event-Logical)> 시리즈다. 특히 빵을 먹는 퍼포먼스는 사회학적으로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는 식탁 앞에 앉아 빵을 먹으려 하지만, 팔에 나무 막대기를 부목처럼 대어 팔을 굽힐 수 없게 만든다. 빵을 입에 넣기 위해 그는 온갖 기괴한 몸짓을 수행해야 한다.
이벤트(Event)는 현대미술에서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나 행위를 뜻한다. 이건용은 여기에 '논리(Logical)'를 더해, 어떤 제약이나 조건 속에서 신체가 반응하는 인과관계를 탐구했다. 이 장면은 영화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속 자동 급식기 장면을 연상시킨다. 기계적 효율성을 위해 인간의 몸을 통제하려 하지만, 결국 그 통제 때문에 인간의 행위가 우스꽝스럽고 비극적으로 변하는 모습 말이다.
이건용의 퍼포먼스는 1970년대 한국의 억압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신체'를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우리는 일상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나 '직장 내 규율' 같은 보이지 않는 부목을 대고 살아간다. 내가 하고 싶은 말, 가고 싶은 곳이 제한될 때 우리는 이건용의 '빵 먹기'처럼 부자연스러운 수행을 하게 된다. 그는 예술을 통해 우리가 처한 구조적 제약을 시각화했다.
4. 현상학적 신체와 구조주의의 만남
이건용의 작업 밑바닥에는 **현상학(Phenomenology)**이라는 철학적 기초가 단단히 자리 잡고 있다. 현상학(Phenomenology)은 대상을 머리로 분석하기 전에, 우리의 몸이 세계와 직접 부딪히며 느끼는 '날것의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는 철학이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 같은 철학자가 대표적이다.
이건용에게 몸은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도구가 아니다. 몸은 세계를 인식하는 유일한 통로다. 그가 캔버스 뒤에서 팔을 흔들며 선을 그을 때, 그 선은 화가의 의도라기보다 관절의 각도와 근육의 긴장이 만들어낸 '현상'이다. 동시에 그의 작업은 개인의 행위가 개별적인 의지보다는 그가 속한 보이지 않는 '구조(언어, 사회 체계 등)'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 **구조주의(Structuralism)**적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이건용이 설정한 규칙들—'캔버스 뒤에서 그리기', '팔을 묶고 먹기'—은 일종의 구조다. 그 구조 안에서 개인(작가)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그는 인간이 환경과 맺는 관계를 탐구한다. 이건용은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이런 '실험적 규칙'이 작동하는 장소로 만들었다. 다만 그의 게임은 죽음이 아니라 '삶의 논리'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
5. 장소특정성: 지금, 여기, 이 순간의 예술
이건용은 **장소특정성(Site-specificity)**을 중요하게 여긴 실험미술가다. 장소특정성 (Site-specificity)은 작품이 놓이는 물리적 장소와 그 장소가 가진 역사적, 문화적 맥락이 작품의 의미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 성질이다. 그는 1971년 '현대미술제'에서 전시장 바닥에 구덩이를 파고 나무를 심는 작업을 했다.
미술관의 화이트 큐브(깨끗한 전시장)라는 인공적 공간에 '흙'과 '나무'라는 자연의 생명력을 강제로 삽입한 것이다. 이는 당시 산업화로 치닫던 한국 사회의 경직성에 던진 질문이었다. 일상에서 우리는 'TPO(Time, Place, Occasion)'라는 말을 쓴다. 상황과 장소에 맞는 옷차림과 행동이 중요하듯, 예술 역시 장소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웹(Web) 공간에서 유목민처럼 떠도는 현대인들에게, 특정 장소에 발을 딛고 구덩이를 파는 이건용의 행위는 '실재하는 감각'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6. 그리고 우리의 몸
나는 다시 이건용의 '신체드로잉' 앞에 선다. 그의 선은 비뚤비뚤하고 거칠다. 하지만 그 안에는 거짓이 없다. 팔이 닿는 만큼만 그어진 선은, 욕심부리지 않는 인간의 겸손한 초상이다. 우리는 디지털 시대에 살며 자신의 몸을 잊곤 한다.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지구 반대편의 물건을 사고, 필터를 씌운 사진으로 자신의 외모를 보정한다.
하지만 우리의 실제 몸은 여전히 배고픔을 느끼고, 피로를 느끼며, 닿을 수 있는 거리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 마치 이건용이 나에게 "당신의 몸이 그리는 그 서툰 선이 바로 당신의 진실이다."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오늘 퇴근길, 거창한 예술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발걸음이 지면에 닿는 감각에 집중해 본 적이 있는가?
혹은 거울을 보지 않고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며 그 윤곽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그 사소한 수행 속에서 당신은 이미 이건용의 예술적 동료가 된 셈이다. 이건용의 예술은 박물관에 갇힌 유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 몸의 움직임을 통해 매번 새롭게 태어나는 현재진행형의 사건이다. 그가 캔버스 뒤에서 뻗은 손길이, 오늘 당신의 무딘 감각을 깨우는 다정한 자극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