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의 노동 문학
거기 있었다. 철컥거리는 컨베이어 벨트 소리와, 끼익 끼익 멈칫거리는 기계음 사이에서 누군가는 시를 썼다. 누군가는 소설을 썼다. 누군가는 썼다기보단 쏟아냈다. 목에서 꺼낸 것이 아니라, 손바닥 굳은살에서 문장이 튀어나왔다.
한국의 노동 문학은 문학사의 변두리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노동 문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고약하게 들렸다. 너무 직설적이고, 너무 투쟁적이고, 너무 불편하니까. 하지만 그 불편함이 바로 시작이었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하면서, 그 불편함은 현실의 증언이 되었다.
증언은 곧 문학이 되었고, 문학은 이데올로기의 첨병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문학은 이념을 넘어섰고, 그것은 가장 눈부신 순간이었다.
2. 노동 문학의 첫 목소리
1970년대, 공장 굴뚝 아래에서 문학이 태어났다. 노동 문학은 산업화의 폭주 기관차에 브레이크를 걸려는 시도였다. 분명한 시작은 전태일이다. 그는 문학가가 아닌 재단사였다. 하지만 그의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외침은 수많은 시보다 강렬했다. 그의 죽음 이후, 김지하의 시가 터졌다. ‘오적’ 같은 시는 권력의 목덜미를 정확히 찔렀다.
김지하, 박노해, 백무산. 그들은 말 그대로 거리에서 시를 수집했다. 노동자의 땀방울, 구둣발 소리, 철야의 한숨, 기숙사의 쿨럭거림. 시는 말보다 사운드에 가까웠다. 뚝뚝 떨어지는 용접 불꽃 소리, 찌익 찌익 철판 긁는 소리, 덜컥 덜컥 퇴근하는 버스의 진동. 이런 게 문학이냐고? 바로 이런 게 문학이었다.
3. 민중 문학의 등장
노동 문학이 특정한 계층의 현실에 닿아 있었다면, 민중 문학은 더 넓은 바다를 품었다. 1980년대, 광주가 피를 흘렸을 때, 문학은 정치였다. 동시에 증언이었고, 전언이었다. 민중은 그때 ‘국민’이 아니었다. ‘백성’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민중'이었다. 이름도 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그림자. 문학은 그 그림자를 잡으려 했다.
임철우의 ‘붉은 방’, 조정래의 ‘태백산맥’, 황석영의 ‘장길산’. 이 작품들은 거대한 서사와 집단의 목소리를 하나의 리듬으로 엮어냈다. 때로는 피곤할 정도로 무겁고 장황했지만, 그 무게는 시대의 무게였다. 대하소설이 아니라 대하진술이었다고 말하면, 뭐… 좀 웃기긴 하지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문학평론가 조남현은 ‘참여 문학’이라는 말을 꺼냈다. 문학이 현실에 참여할 수 있어야 진정한 문학이라는 것. 이때부터 문학은 ‘무엇을 말하는가’보다 ‘누가 말하는가’에 더 민감해졌다. 글 쓰는 사람의 위치, 정체성, 언어의 뿌리. 그런 것들이 이전보다 중요해졌다. 문학은 시소 위에 앉아 있었다. 한쪽은 현실이고, 다른 쪽은 상상. 균형은 자주 무너졌지만, 그 무너짐조차 문학이었다.
4. 그래도 문학
민중 문학은 시대의 파고를 넘어왔다. 90년대 이후, 노동자는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파견, 계약직, 플랫폼 노동. 그들의 삶은 변했지만, 고통은 변하지 않았다. 이제 문학은 거대한 구호 대신, 조용한 묵음을 들려준다. 의자에 앉아 있는 한 여성 노동자의 뒷모습. 그 등허리에 눌린 삶의 무게가 바로 지금 한국 노동 문학의 문장이다.
노동 문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왜냐면 노동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계는 자동화되고, 사무는 디지털화되었지만, 인간은 여전히 손을 쓰고, 등을 굽히며 분주히 움직인다. 피로는 쌓이기만 한다. 일터에서 우리의 인권과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한 문학은 계속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