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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 넘는 시: 한국 시 번역하기

by Godot82 2025. 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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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 번역-번역시
한국시 번역-번역시

 

1. 시는 어떻게 이민을 가는가?

한국 시가 해외에 소개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시가 단순히 문장이 아니라, 온도이고, 숨결이고, 눈치이고, 말해지지 않은 것들의 진동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번역하란 말인가?

시를 번역한다는 건 시를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일이다. 단어 하나하나에 실린 문화와 정서, 어감의 미묘한 떨림까지 다른 언어로 갈아 끼워야 한다. 번역자는 그저 단어를 바꾸는 사람이 아니라, 시인과 편집자, 발레리나와 외교관을 동시에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움베르토 에코는 번역은 “거의 같은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것이라는 말이다. 거울 속에 비친 나와, 사진 속 나처럼 말이다. 발터 벤야민은 시의 번역은 원작과는 별개의 “순수 언어”로 도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간단히 말하면, 그냥 단어만 옮기지 말고, 시가 가지고 있는 전체적인 영혼을 전달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영혼이란 게 말처럼 쉽게 옮겨지는가?

2. 한국 시는 번역될 수 있을까?

한국 시는 그 자체로 농도 짙은 발효음식 같다. 오래된 말, 지역어, 유교적 정서, 구어체와 문어체가 동시에 공존하는 언어의 숲. 이걸 통째로 옮기자니, 외국어 번역가는 젓갈 항아리째 들고 공항 검색대를 지나야 하는 셈이다.

대표적으로 김혜순, 이상, 황동규 등의 시가 번역되어 소개되었지만, 모두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특히 김혜순의 시는 언어의 해체, 여성의 몸, 정체성의 파편 등 기존 번역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각적 구조를 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돈미(Don Mee Choi) 번역가가 김혜순의 『죽음의 자서전』을 번역해 2019년 그리핀 시 문학상을 수상했다.

3. 번역은 시의 두 번째 삶이다

요즘은 한국 시의 번역도 달라지고 있다. 문학과 지성사, 창비, 한국문학번역원 등 여러 출판사와 기관이 우수한 번역자를 발굴하고, 꾸준히 시를 해외에 소개하고 있다. 2020년대에 들어와 황인찬, 이장욱, 김언 등의 시도 영어로, 프랑스어로, 독일어로 옮겨지며 해외 독자들의 감각에 다가서고 있다.

한국 시가 해외에서 살아남으려면 시를 ‘해외에 알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시는 번역되면서 변한다. 하지만 그 변화가 바로 시의 두 번째 생애다. 가령 외국 독자는 ‘달항아리’라는 단어를 몰라도 그 말이 주는 둥글고도 비어 있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게 바로 시다.

시는 원래 혼란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언어로 옮긴다고 해서 더 혼란스러워진다 해도 그건 꽤 괜찮은 진화가 아닐까? 이제, 우리는 한국 시를 더 많은 혼란 속으로 던져야 할지도 모른다. 그 안에서 누군가는 낯선 언어로 된 시 한 줄에 자신의 삶을 비춰보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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