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괴인 (A Wild Roomer)
괴인은 기이한 사람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괴인이 될 수도 있지만, 자신이 스스로를 괴인이라고 느낄 수는 없는 경계 그 사이 어디쯤을 서성거리는 존재다. 팬데믹 후 우리는 일상에서 여러 균열을 목격했다. 지연되고, 어긋나고, 기대와 현실이 달라지는 것을 보며 균열들이 얼마나 쉽게 일상에 침투하는가를 보여주는 영화다.
2. 줄거리
주인공은 작은 인테리어 공사 일을 하며 일상을 꾸려가는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세워 둔 차 지붕이 찌그러진 걸 보게 된다. 공사 중이던 장소 앞에 세워둔 차였고, 그 위로 누군가 뛰어내렸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집주인은 범인을 찾자며 주인공을 부추기고 주인공은 혼란에 빠지기 시작한다.
차 지붕이 찌그러진 사건 이후 주인공의 일상에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동료들과의 관계, 감정의 표현, 말과 침묵, 기대와 실망이 뒤섞인다. 이 와중에 주인공은 자신이 주변에게 진심으로 이해받는 사람인지, 타인들과의 벽이 생각보다 단단하다는 걸 느끼며 갈등하게 된다.
3. 너에게 나는 무엇인가
주인공은 자기(ego)와 와 타자(other) 사이의 경계(boundary)에 끊임없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인물이다. “내 차의 지붕을 누가 찌그러뜨렸는가?”라는 단순한 외형적 질문은 곧 “내가 존중받는가?”, “내 영역은 어디까지인가?”, “다른 사람의 시선에 의해 내가 어떻게 판단되고 있는가?” 같은 내면의 메시지로 전환된다.
표면적으로 보면 차 지붕이 찌그러진 것과 누군가 뛰어내린 사건에 불과하지만, 사건은 곧 관계망(ripples) 속에서 의심, 분노, 정체성의 혼란, 무시당함의 감정, 불안 같은 여러 갈래의 감정을 만든다. 또한 주인공 스스로가 자신에게 부딪히는 감정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고, 말하지 못한 감정들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애쓴다.
4. 마치며
사람이라면 누구나 종종 자신의 행동이나 감정이 “괴인스럽다(strange, monstrous)”는 것을 인정하기 힘들어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른 사람의 시선, 타인의 기대, 나와 타인 사이의 거리감이 어떻게 스스로를 낯설게 만드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비교적 긴 시간 동안 인물들의 미묘한 심리 변화, 일상의 어색한 순간들, 관계의 긴장과 완화(fluctuation)를 여유롭게 보여줄 여지를 준다.
영화가 느리다고 해서 지루한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이런 느림과 여유가 영화를 보는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타인의 말하지 않은 말들을 상상하게 만드는 기회를 준다. 특히, 영화 속 배우들이 연기 경험이 없거나 적은 비전문 배우라는 점도 흥미롭다. 그런 그들이 ‘영화 밖 실제 사람’처럼 보이는 순간들에서는 묘한 쾌감도 느낄 수 있다.
얄미우면서도 정 있는 기홍과 어색하지만 진심을 가진 정환, 웃음과 불편함 사이에서 반응하는 주변 인물 등 그 다양성과 불완전성이 보는 이에게 신선함을 가져다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