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고전은 물러나지 않는다: 춘향전과 홍길동전

by Godot82 2025. 6. 6.
반응형

고전문학-춘향전-홍길동전
고전문학-춘향전-홍길동전

 

1. 저항으로서의 "춘향전"

우리는 고전을 ‘오래된 것’으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고전은, 어쩌면 가장 느리게 다가오는 최신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마치 오래전 보낸 편지가 뒤늦게 도착하듯, 지금의 시간에 딱 맞게.

 

《춘향전》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판소리계 소설이다. 이름 없는 작가들이 이야기를 입에서 입으로 전하다가, 결국 글로 남긴 작품. 줄거리는 단순하다. 양반 이몽룡과 기생의 딸 춘향이 사랑에 빠지고, 이별과 고난을 겪은 뒤 다시 만나 해피엔딩을 맞는다. 하지만 이 단순한 이야기 속에, 너무 많은 것들이 들어 있다. 

 

춘향은 ‘부모 없는 여자’다. 당시로서는 가장 힘없는 존재. 그런데 그녀는 고개를 들고 거절한다. “나는 변 사또의 수청을 들 수 없습니다.” 거절의 말, 그것도 여성의 입에서 나온다는 건 조선시대에선 거의 폭탄선언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있다. 페미니즘(feminism)이다. 이 말은 19세기 유럽에서 처음 쓰였고,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상이다. 물론 조선시대에 그런 단어는 없었다. 하지만 춘향은 행동으로 말했다. 그건 작은 혁명이었다. ‘춘향은 복종하지 않는다’는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2. 이름 없는 자들의 왕 "홍길동전"

《홍길동전》은 조선 시대 최초의 한글 소설로 알려져 있다. 작가는 허균. 당대의 학자이자 이상주의자였다. 길동은 서자(적자 아닌 아이)로 태어나, 이름조차 쓸 수 없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으로 시작되는 비극. 홍길동은 떠난다. 그리고 활빈당이라는 집단을 만든다.

 

그들은 부자의 재산을 훔쳐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준다. 쉽게 말하면 조선판 ‘로빈후드’다. 아니, 조금 더 요즘식으로 말하면, 시스템을 해킹한 자. 길동은 당시의 신분제도라는 ‘시스템’을 뚫고, 새로운 규칙을 만든 사람이다.

여기서 떠오르는 건 아나키즘(anarchism)이라는 개념이다. 19세기 유럽에서 나온 정치사상인데, ‘국가나 권위 같은 시스템은 필요 없다’는 생각이다. 허균은 이런 생각을, 소설이라는 우회로로 말했던 것이다. 체제 밖의 인간, 하지만 누구보다 정의로운 인간. 그래서 길동은 여전히 우리를 자극한다.

3. 마치며

만약 춘향이 2025년에 산다면? 아마도 스스로 계약서를 읽고, 불공정 조항을 지우며 말했을 것이다. “나는 이 조항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홍길동은? 그는 다크웹에서 부패 정치인의 비자금을 폭로하고 있었을 것이다. 활빈당은 이름만 다를 뿐, 지금도 존재한다. SNS에서, 각종 미디어에서.

문학이란 결국, 과거의 시간에서 지금의 언어를 꺼내는 작업이다. 춘향과 길동은 여전히 말하고 있다. 춘향은 질문을 던졌다. “당신이 원하는 나로 살아야만 하나요?” 홍길동은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 이름 없는 자도, 주인공이 될 수 있어.”

이 둘은 사랑과 정의라는 뼈대 위에 세워진 한국 문학의 뿌리다. 이 뿌리는 단단하다. 하지만 뿌리가 단단하다는 건, 거기서 또 다른 가지가 나온다는 뜻이기도 하다. 춘향전과 홍길동전은 오늘도 새로워질 준비를 하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의 몫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