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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가요와 경기체가: 조선시대에서도 살아남은 이유

by Godot82 2025.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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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가요-경기체가-조선시대-조선시대문학
고려가요-경기체가-조선시대문학

 

 

 

1. 고려가요

고려가요는 말 그대로 고려 시대에 유행했던 노래이다. '속요'라고도 불렸고, 주로 민중들 사이에서 널리 유행했다. 고려가요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는데 후에 '악장가사'나 '시용향약보' 같은 책에 일부가 쓰이면서 후대까지 남게 된 것이다. 대표작으로는 <가시리>, <청산별곡> 등이 있다.

 

<청산별곡>의 후렴구인 "얄리 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같은 경우 운율감을 살려서 노래를 더 리듬감 있고 부르기 쉽게 만들었다. 또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같은 구절처럼 자연을 소재로 한 표현들이 많았다. <가시리>의 경우 떠나가는 사람에 대한 슬픔과 아쉬움을 표현했는데, 이처럼 사랑과 이별도 많이 다뤄졌다. 

2. 경기체가

경(景)과 기(幾)라는 한자를 더해 경사스럽고 풍요롭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경기체가는 문장 구조가 길고, 진중하고 장엄한 느낌이 드는 게 특징이다. 주로 국가의 번영이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내용이 많았다. 대표작인 <한림별곡>의 경우 학문에 매진하는 즐거움을 느끼는 지식인에 대한 노래이다.  

3. 조선으로 이어진 고려가요와 경기체가

조선 시대가 되면서 고려가요는 '시조'라는 형태가 되었다. 고려가요는 자유로운 형식인 반면 시조는 고려가요처럼 짧고 운율감이 있는 구조를 가졌으되 형식은 3장 6구 4 음보의 정형화된 형식이다. 국가의 번영을 찬양하고 교훈적인 경기체가는 조선의 '악장'과 '가사 문학으로 이어졌다. 

 

대표작으로는 <용비어천가>가 있다. 이처럼 조선 왕조의 창업을 찬양하는 내용이 많았다. 경기체가의 긴 문장은 조선 시대에 이르러 가사 문학으로 발전한 것이다. 조선 후기에는 <관동별곡>이나 <사미인곡> 같은 다채로운 내용이 담긴 작품이 등장했다.

 

고려가요는 시조나 현대시에도 영향을 미친 한국 서정 문학의 본바탕이다. 경기체가의 경우에는 가사 문학과 악장 문학으로 변모하며 다양한 문학 형식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고려가요와 경기체가를 제대로 알면 조선 시대의 문학뿐 아니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국 문학사의 줄기와 흐름을 알 수 있다. 

 

고려가요나 경기체가가 단순히 지나간 옛 노래가 아니라 조선시대를 거쳐 변화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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