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동녘의 대지와 서녘의 별이 만나는 곳: 이성자가 일궈낸 우주의 뜰을 거닐다
삼청동의 고즈넉한 풍경을 품은 갤러리현대의 문턱을 넘어서면, 마치 수천 년의 시간을 머금은 비단 위로 은하수가 쏟아진 듯한 묘한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그곳에는 한국 현대미술의 개척자이자, 프랑스 예술계에서 '동양의 지혜를 서양의 언어로 풀어낸 거장'이라 칭송받는 이성자(Rhee Seund-ja) 작가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
그녀의 전시는 단순히 그림을 보는 행위를 넘어, 낯선 타국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며 한 땀 한 땀 일궈낸 고독한 모성의 기록이자 우주적 사유의 결실이다. 이제 갤러리현대에서 펼쳐질 그녀의 연대기를 따라가며, 왜 우리가 그녀의 캔버스 앞에서 마음의 평온을 찾게 되는지 한 편의 수필처럼 그 깊은 속내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2. 경계를 넘어선 자유인: 이성자의 삶과 자취
이성자 작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녀가 선택했던 용기 있는 삶의 궤적을 먼저 보아야 한다. 1918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그녀는 일제강점기라는 암울한 시대를 살면서도 배움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다. 일본에서 유학하며 신여성의 삶을 꿈꿨던 그녀는, 해방 이후 세 아이의 어머니로 평범한 삶을 살던 중 운명처럼 예술의 길을 선택한다.
1951년, 한국전쟁의 참화 속에서 그녀는 홀로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아이들을 고국에 남겨두고 떠난 그 고통스러운 선택은 훗날 그녀가 캔버스 위에 쏟아낸 수만 번의 붓질, 즉 '여인과 대지' 시리즈의 근원이 되었다. 파리의 아카데미 그랑 쇼미에르에서 수학하며 서구 현대미술의 흐름을 익혔지만, 그녀의 내면에는 늘 한국적인 정서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1958년 프랑스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후, 그녀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화훈장을 두 차례나 받을 정도로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인정받았다. 2009년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초기 '여인과 대지'에서 중기 '도시', 그리고 후기 '우주'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예술은 땅에서 시작해 하늘로, 그리고 영원한 우주로 팽창했다.
그녀의 삶은 그리움을 창조의 에너지로 바꾼 연금술의 과정이었으며, 동양과 서양이라는 이분법적 경계를 허물고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건설한 여정이었다.
3. 여인과 대지(Woman and Earth): 그리움을 심어 일군 모성의 밭
이성자의 초기 작업을 상징하는 핵심 키워드는 **여인과 대지(Woman and Earth)**다. 이는 단순히 여성과 땅을 그렸다는 의미를 넘어, 만물을 품고 길러내는 모성적 생명력을 예술로 승화시킨 개념이다. 여인과 대지 (Woman and Earth)는 이성자 작가가 파리 정착 초기(1950~60년대)에 몰두했던 주제다.
땅을 일구는 농부의 마음으로 캔버스 위에 수만 번의 짧은 선들을 겹쳐 쌓아 올리는 수행적 방식을 통해, 고국에 두고 온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과 생명력을 표현했다. 이성자는 붓질 한 번을 자식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처럼 여겼으며, 그 반복된 행위 끝에 캔버스는 비옥한 대지처럼 두터운 질감을 갖게 되었다.
4. 마티에르(Matière): 캔버스 위에 새겨진 시간의 나이테
이성자의 작품을 실제로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손으로 만져보고 싶을 만큼 도드라진 표면의 질감, 즉 **마티에르(Matière)**다. 마티에르 (Matière)는 프랑스어로 '재료'나 '물질'을 뜻하며, 예술에서는 회화의 표면에 나타나는 질감을 의미한다. 작가가 어떤 도구를 사용하고 어떻게 물감을 쌓아 올리느냐에 따라 매끄럽거나, 거칠거나, 입체적인 느낌을 주게 된다. 영어로는 'Texture' 혹은 'Materiality'라고 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오래된 고가구의 거친 나무 결을 만지거나, 잘 구워진 도자기의 매끄러운 표면을 볼 때 마티에르를 경험한다. 이성자는 물감을 단순히 칠하는 것이 아니라 층층이 쌓고 다시 긁어내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는 대중예술 중 **클레이 애니메이션(Clay Animation)**에서 점토의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따뜻한 감성, 혹은 거친 숨소리까지 담아낸 LP 판의 아날로그적인 질감과 비슷하다. 그녀의 마티에르는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간절한 시간들이 층층이 쌓여 만들어진 '시간의 나이테'와도 같다.
5. 음양(Yin and Yang): 대조되는 것들의 아름다운 화해
이성자의 중기 이후 작품들에는 원(圓)과 사각형, 직선과 곡선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데, 이는 동양 철학의 근간인 **음양(Yin and Yang)**의 원리를 현대적 추상으로 풀어낸 것이다. 음양 (Yin and Yang)이란 우주 만물을 생성하고 변화시키는 상반된 두 성질을 뜻한다. 어둠과 밝음, 여자와 남자, 땅과 하늘처럼 서로 반대되지만 실제로는 보완하며 하나로 어우러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성자는 이를 통해 서구적 합리주의와 동양적 정신성의 합일을 꾀했다. 캔버스 안에서 차가운 기하학적 문양과 따뜻한 색채를 공존시킴으로써, 갈등이 아닌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6. 판화(Printmaking): 나무의 결에 새긴 그리움의 시
이성자는 회화뿐만 아니라 판화(Printmaking) 분야에서도 독보적인 발자취를 남겼다. 특히 그녀는 나무의 숨결이 느껴지는 목판화를 사랑했다. 우리는 일상에서 판화를 고무인이나 스탬프를 찍는 행위로 경험한다. 나무 도장을 인감으로 찍을 때 그 나무 고유의 무늬가 함께 찍혀 나오는 것처럼, 이성자는 나무가 가진 생명의 흔적을 예술로 끌어들였다.
대중예술 중에서는 정교한 **타투(Tattoo)**가 피부라는 바탕 위에 영원한 문양을 새기는 방식, 혹은 빈티지한 느낌의 판화 포스터가 주는 소박하고 정겨운 미학과 닮아 있다. 그녀에게 판화는 딱딱한 나무를 깎아 부드러운 종이에 옮기는, '강함'을 '부드러움'으로 승화시키는 치유의 과정이었다.
7. 중첩(Overlapping): 겹겹이 쌓인 마음의 층위
이성자의 화풍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특징은 색과 형상이 서로 겹쳐지는 **중첩(Overlapping)**이다. 중첩 (Overlapping)은 하나의 형태나 색이 다른 것 위에 놓여 겹쳐지는 상태를 말한다. 이를 통해 공간의 깊이감을 만들거나 시간의 흐름을 암시한다. 영어로는 'Superposition' 혹은 'Layering'이라고도 한다.
일상의 예로, 투명한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과 창밖의 풍경이 하나로 겹쳐 보일 때의 묘한 깊이감을 떠올려보라. 대중예술 속에서는 영화 **<인셉션>**에서 꿈의 층위가 겹쳐지며 시공간이 확장되는 감각, 혹은 음악에서 레이어링(Layering) 기법을 통해 여러 악기 소리를 겹쳐 웅장한 사운드를 만드는 것과 같다.
이성자는 형태를 단순히 나열하지 않고 겹침으로써,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시선, 그리고 미래의 희망이 한 화면 안에서 공명하게 만들었다.
8. 우주(Cosmos): 지상의 집을 떠나 별의 고향으로
말년의 이성자는 '극지로 가는 길', '우주' 시리즈를 통해 초월적인 세계를 그렸다. 그녀에게 우주는 죽음 이후의 세계가 아니라, 모든 생명이 하나로 연결되는 거대한 순환의 장이었다. 우리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내가 우주의 일부임을 느낀다. 대중예술 중에서는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이 시공간을 초월해 딸과 교감하는 그 거대한 사랑의 공간, 혹은 우주 공간을 유영하는 듯한 앰비언트(Ambient) 음악의 몽환적인 분위기와 맞닿아 있다.
이성자의 우주는 차가운 진공 상태가 아니라, 마치 한복의 색동무늬처럼 화려하고 따뜻한 빛들이 춤추는 축제의 마당과 같다. 그녀는 평생을 거쳐 땅을 일구던 손길을 멈추지 않고 결국 하늘의 별을 캔버스에 옮겨 담았다.
9. 갤러리현대에서 만나는 영원한 귀환
이성자 작가는 생전에 "나는 죽어서 별이 되어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라고 말했다. 갤러리현대에서 마주할 그녀의 작품들은 어쩌면 우리 곁으로 돌아온 그녀의 별빛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그림은 우리에게 화려한 수사를 던지지 않는다. 다만 묵묵히 쌓인 물감의 층을 통해, 인생이라는 거친 땅을 어떻게 일구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끝에 마주할 우주가 얼마나 찬란한지를 보여준다.
자극적인 이미지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이성자의 '우주의 뜰'은 잠시 숨을 고르고 영혼을 씻어낼 수 있는 맑은 샘터가 되어줄 것이다.
바쁜 일상의 속도를 늦추고 삼청동의 고요한 화랑 안으로 발을 들여보길 권한다. 이성자가 세워놓은 그 기하학적 문양 사이로 흐르는 빛을 따라갈 때, 당신의 마음속에도 잊고 지냈던 '고향'의 따스함과 '우주'의 광활함이 동시에 열리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