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엘렌 식수 (Hélène Cixous)
엘렌 식수. 이름을 소리 내어 발음하면, 어딘가에서 새가 날아오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단단한 철학자의 이름이라기보다는, 숨과 웃음과 균열이 섞인 어떤 제스처처럼 들린다. 실제로 그녀는 철학자이자 문학이론가이면서, 동시에 시인이며 극작가이고, 무엇보다 **글을 ‘몸으로 쓰는 사람’**이다.
엘렌식수는 1937년, 프랑스령 알제리 오랑에서 태어났다. 유대계 여성으로 식민지의 공기를 마시며 성장했다. 이미 그 출발부터, 하나의 언어와 하나의 정체성으로는 도착할 수 없는 삶이었다. 엘렌 식수는 늘 경계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경계에서 글을 썼다.
2. 그녀는 무엇을 문제 삼았는가
식수가 평생 붙잡았던 질문은 단순하다. “왜 글은 늘 같은 목소리로 쓰여 왔는가?” 이 질문은 남성 대 여성 같은 단순한 대립이 아니다. 누가 말할 수 있었고, 누가 침묵하도록 길들여졌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논리, 직선, 결론, 위계, 명확성. 서양 철학과 문학이 미덕으로 삼아온 것들. 식수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말한다.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그녀는 글을 이렇게 상상했다. 끊기고, 넘치고, 웃고, 울고, 옆으로 새고, 갑자기 방향을 바꾸는 것. 그것이 바로 여성적 글쓰기(écriture féminine)라고 불린 개념의 시작이다.
3.『메두사의 웃음』, 1975년
1975년, 엘렌 식수는 짧지만 폭발적인 에세이를 발표한다.『메두사의 웃음(Le Rire de la Méduse)』이 글은 선언문에 가깝다. 그러나 차가운 선언이 아니라, 몸에서 튀어나온 웃음 같은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다. 메두사는 왜 괴물이 되었을까? 식수는 묻는다. 혹시 그 웃음이 너무 컸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여성이 말하고, 욕망하고, 웃을 때 사회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을까. “여성은 자신을 써야 한다.” “여성은 자신의 몸으로 글을 써야 한다.” 여기서 ‘몸’은 생물학적 기관만이 아니다. 경험, 감각, 기억, 억압, 침묵, 그리고 말해지지 않은 모든 것들의 집합이다. 식수의 이론이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익숙한 설명 방식으로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바꿔 말해볼 수 있다.
이를테면, 일기장을 쓸 때를 생각해 보자. 문법을 맞추지 않아도 되고, 문장이 중간에 끊겨도 된다. 오늘의 감정이 어제의 기억과 섞이고, 이유 없이 화가 나 있다가 갑자기 웃음이 나올 수도 있다. 식수는 말한다. 그게 글쓰기의 본래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우리가 학교와 제도 속에서 배운 글쓰기는, 너무 오랫동안 단정해지고 정리되어 왔다고.
4. 언어는 중립적이지 않다
식수는 언어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고 보았다. 언어는 역사이고, 권력이며, 누군가의 방식이 누군가의 방식보다 더 ‘정상’으로 취급되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그녀는 기존 언어를 조금씩 비틀고, 흔들고, 깨뜨린다. 그녀의 문장은 종종 이렇게 흐른다. 문장이 끝나기 전에 다른 문장이 끼어들고, 의미가 확정되기 전에 감정이 먼저 도착한다. 이것은 혼란이 아니라 저항의 형식이다.
그녀는 이론가이기만 했을까 아니다. 엘렌 식수는 소설을 썼고, 희곡을 썼으며, 자크 데리다와 깊은 지적 우정을 나눴다. 그녀의 대표 저작으로는『메두사의 웃음』(1975)『Coming to Writing』(1991) 등이 있다. 그녀는 1968년 파리 8대학(뱅센 대학)의 설립에도 관여하며, 실험적 사유의 공간을 현실 속에 만들었다. 글쓰기만이 아니라, 제도 자체를 흔들려했던 사람이다.
식수의 문체를 흉내 낸다는 것 식수처럼 쓴다는 건, 흉내 내는 일이 아니다. 그건 허락하는 일에 가깝다. 문장이 흐르도록, 말이 엇나가도록, 의미가 미끄러지도록. 그녀의 글은 독자를 설득하지 않는다. 독자를 움직인다.
5. 마치며
어쩌면 우리는 너무 잘 정리된 문장에 익숙해졌는지도 모른다. 논리적으로 맞고, 구조적으로 안정적인 글들. 하지만 어떤 감정은 그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 식수는 그 바깥을 가리킨다. 말해지지 않은 것들, 웃음과 울음 사이, 아직 이름 붙지 않은 감각들. 그녀의 글은 “여기에도 언어가 있다”고 말한다.
가령 엘렌 식수는 이렇게 말하는 것도 같다. “글을 써라. 제대로 쓰려고 애쓰지 말고, 살아 있는 방식으로 써라.” 메두사는 아직 웃고 있다. 그 웃음은 돌로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굳어 있던 것들을 풀어버린다. 그리고 우리는, 그 웃음이 남긴 문장 위에서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히 다른 방식의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다.